정답은 없다.

정답이 있는 분야가 있다. 대표적으로 수학, 물리, 화학 등 자연과학 영역은 우리가 알고 있든 아직 모르고 있든지에 관계없이 정답이 존재한다. 하나의 진실 값이 존재한다고 확실히 믿어진다. 나는 강의를 할 때 종종 휴대폰을 꺼내어 들고는 청중에게 묻고 한다. 이 휴대폰의 무게는 몇 그램일까요? 우리는 답을 모르지만 정답이 있음을 안다. 저울에 올려놓은면 즉시 그 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시비가 없다. 진실 값이 하나만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 삶의 꽤 많은 영역들은 정답이 하나만 있지 않다. 사회, 정치, 문화, 경제, 심리, 경영 등의 영역을 보면 무수한 현상들이 존재하고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무엇이 진실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다들 자신의 생각이 정답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치열하게 논쟁하고 다투게 된다. 그리고 그 다툼이 서로를 죽이는 전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러 장치들과 관습과 제도와 지혜들을 오랜 세월 동안 발전시켜왔다.


정답이 없는 영역인데도 사람들은 정답이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정답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모른다는 전제를 가진다. 나는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정답이 있다는 전제는 학습을 왜곡하고 창의성을 왜곡한다. 그저 입을 다물고 들으려 하고 외우려한다. 그리고 충분히 설명해주었는데도 여전히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행동을 꽤 많이 관찰한다.


정답이 어디있어? 내가 원하는 것이 정답이지.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고 노력하고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얻을 수 있는 도구들을 만들어낸다. 신기하게도 그것들은 주로 잘 작동하고, 심플하고, 멋지기까지 하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삶을 만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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