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전해준 선물

천천히 걷는 즐거움

코로나 때문에 덕을 본 경험을 글로 써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이기적일 수 있고 심하면 어떤 누구에게는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코로나로 인한 불편과 고통은 우리의 삶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할 수 없는 또 다른 진실이 있다고 믿어진다. 코로나는 나에게서 중요한 것들을 빼앗아갔지만 그 대신 더 값진 선물을 주었다.


코로나는 나에게서 일할 공간을 빼앗았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나는 주로 도서관 혹은 창업지원센터와 같은 공적 공간에서 작업을 해왔다. 그 공간들은 매우 쾌적하고 효율적이어서 사실 그 어떤 대기업의 사무공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더군다나 물리적으로 정해진 공간에서 근무해야 하는 일반 조직의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귀한 작업공간이다. 하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늘면서 공공 공간들은 폐쇄되었고 바로 그 순간부터 소위 출근을 할 공간이 사라져버렸다.


집은 쉬는 곳이지 일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고, 상당한 게으름을 타고났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나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서라도 아침 일찍 어디론가 출근을 하는 습관을 오래전부터 가져왔다. 그런 내가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은 솔직히 힘든 변화였다 설상가상으로 아내의 눈치가 심해졌고, 장모님과 학교에 가질 못하는 고등학생 아들과 이제 대학에 입학했지만 입학식도 못한 딸아이와 하루 종일 좁은 아파트에서 일주일, 한달을 기약없이 같이 지내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긴장과 불편을 가져왔다. 하지만 어쩌랴 갈곳이 없는 것을.


인간은 적응하는 존재라고 했던가! 나는 이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우선 시작한 것은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거실과 부엌등을 깔끔하게 청소하는 일이었다. 진공청소기를 사용하지 않고 물걸레를 사용하여 거실 바닥의 먼지를 제거하고, 강아지 배변판을 깔끔하게 닦았다. 청소는 확실히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다음으로 시작한 것은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일이었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어머니의 통치 영역이었기에 감히 그것을 넘볼 수도 없거니와 또한 능력도 없었기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식사를 마친 후 주방에 수북히 쌓인 지저분한 그릇이며 식탁 등은 주인없는 무주 공산 같은 곳이어서 내가 쉽사리 점령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꺼리는 일이어서인지 작업을 마친 후에 나는 열렬한 찬사를 받게 되었다. 게다가 무엇인가를 깔끔하게 해결했다는 성취감은 또 다른 본질적인 소득이 되었다. 이렇게 하면서 천천히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한달 내내 그리고 계속해서 집에 있는 것에 적응해갔다. 그러면서 발견하는 집이 주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발견하고 누리게 되었다. 거실 전체가 나의 작업장이 되었다.


코로나는 나에게서 생업을 빼앗았다. 정확히 표현하면 소득을 빼앗았다. 조직 관리자들의 리더십개발을 목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하는 것이 직업인 나는 코로나가 발생하고서 직격탄을 맞았다. 예정된 모든 교육이 취소되었다. 연기가 아니라 취소되었다. 고객이 사라진 것이다. 한달을 벌어서 한달을 사는 취약한 재정 구조를 가지고 있는 프리랜서에게 그리고 더욱이 사교육비와 주거비로 상당한 지출을 감당하고 있던 나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상황과 처지를 알기 때문에 가끔 만나는 지인들은 대놓고 묻지는 않지만 예전과는 좀 다른염려하는 표정으로 어떻게 지내냐고 안부를 묻는다. 희안하게도 나의 대답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요.” 였다. 일하지않고 노는게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식의 이야기를 하며 이 글에서 적고있는 그런 생각들을 나누었다.


일이 줄어들고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닥치는대로 일하지말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화가는 돈을 벌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다만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을만큼의 수입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재미있게 본 영화 ‘베테랑’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한 형사는 돈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동료에게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기막힌 대사를 날렸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 형사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인생이 추구하는 가치가 그로하여금 형사의 일을 선택하게 하였고 어려움이 많지만 극복하면서 계속하게 한 것이다. 물론 대출이 늘었다. 하지만 아직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에 감사한다.


일이 많던 시절에는 한달에 얼마를 벌 수 있는가에 경쟁하듯이 몰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적게 벌고 싶지는 않았다. 코로나는 그런 나에게서 일을 빼앗아갔고 왜 일하는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남들보다 더 벌고 싶은 욕망을 버리고, 자녀가 원하는 수준의 뒷바라지를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용기를 내어 가치있는 방향을 선택하고 전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코로나는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을 것으로 보여진다. 아카시아꽃이 필 무렵이면 아마 종식될 거야 하는 희망을 가지고 견디었는데 지금 한 여름을 앞두고 있다. 듣는 뉴스들은 올 가을과 겨울에 대규모의 재유행이 있을 것이 확실시 된다고 하면서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가 전해준 선물을 잠간만 맛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눈가리고 아웅하기 식의 삶의 변화가 아니라 진실로 근본적으로 삶의 방식을 재조정해야함을 일깨운다.


양이 아니라 질을 추구하면서,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비하고, 삶이 준 축복을 발견하여 누리라고 일깨운다. 천천히 걷는 법을 배우라고 타이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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