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은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 룻기 2장 23절.
국가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안보이다. 영화를 보더라도 국토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다룬 영화들이 할리우드를 지배한다. 적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무너지고서는 아무것도 존립할 수가 없다.
지금처럼 법과 질서가 자리를 잡은 시대에도 강자의 폭력으로 전쟁이 벌어지고, 목숨과 재산을 빼앗기는 일들이 뉴스를 채운다. 그럼 룻이 살았던 시대, 지금으로부터 3천 년도 넘는 옛날에는 치안과 안보가 어떠했을까?
룻은 남편을 일찍 사별한 과부였다. 의지하며 모시고 사는 시어머니 역시 과부이다. 그들에게는 땅 한 평이 없어서 추수 때에 들에 나가 이삭을 주워서 식량을 마련했다. 게다가 그녀는 고향을 떠나 다른 민족이 사는 땅으로 온 이방 여인이었고, 가장 빈천하고 취약한 계층의 사람이었다.
룻기를 읽다보니 밀레가 그린 ‘이삭 줍는 여인들’이 떠올랐다. 그 그림이 한국에 와서 예술의 전당에 전시되었을 때에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림에 대한 느낌은 밀레는 이삭을 줍는 최하층의 가난한 여인들을 신전에 걸려있는 신들의 모습처럼 그렸다는 설명과 어우러져서 꼼짝 못하고 오랜 시간 바라보게 할 만큼 강렬했었다. 문득 밀레가 그가 살았던 시대상을 그리고자 했으면서도 어쩌면 룻기를 읽다가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삭을 줍는 장면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이후 40년을 광야에서 정처 없이 떠돌던 시절, 새벽에 진 밖으로 나가서 만나를 주워서 식량으로 삼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스라엘이 가장 가난했고 취약했던 시절의 모습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룻이 살았던 시대에 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울타리는 가족이었을 것이다. 남편이 중요했을 것이고, 아들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일가친족이 보호막이 되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마을 공동체가 그리고 부족 전체와 민족이 보호막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섬기는 신이 그들을 지켰을 것이다.
룻은 자신을 지켜줄 남편을 사별하였으므로 그 시절의 풍속에 따라 남편의 형제들이 그 책임을 감당해야 했지만 애석하게도 형제도 죽어서 없었다. 그래서 그 보호하는 의무가 친척인 보아스에게 기대되었으리라. 영어 성경에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을 칭찬하며 이삭을 넉넉히 줍도록 배려한 보아스를 가리켜서 a guardian-redeemer of our family라고 칭한 배경이리다.
보아스는 룻이 아직 젊은 과부인데, 젊은 남자들을 쫒지 않고, 시어머니 나오미 친족의 보호에 의지하고 전통을 따르는 행동을 하는 것을 두고 룻의 현숙함을 칭찬하였고, 자신의 가문이 룻을 지켜야 하는 책임을 감당할 것을 약속하였다.
룻기를 읽으며, 새삼 구성원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야 하는 것이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목적이자 책무이란 점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은 3천년 전과는 너무도 다르다. 가족의 울타리도 보호막의 의미도 있지만 억압의 이미지로도 인식되는 시대가 되었다. 공동체보다는 개인이 중요한 사회가 된 것은 그만큼 사회가 발전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니 반겨야 할 현상이다.
성숙한 공동체는 구성원을 억압하지 않으면서 구성원을 보호할 것이다. 먼저는 가족이 그러해야하고, 직장이 그러해야 하고, 교회와 마을과 국가가 그러해야 할 것이다.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계층의 여인 룻에게서 증손자인 다윗이 태어난다.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