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공감

어제 딸에게 사과도 하고, 딸에게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도 할 겸해서 글을 올리고는 딸에게 링크를 보냈다. 딸 아이는 바로 카톡을 보내왔다. 그리고 전화로도 자신이 왜 화가 났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아빠. 전 단순히 공감을 원한 게 아니예요! 저야말로 그냥 공감해달라는 식의 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고 아빠가 NT라서 대화가 이렇게 끝난 게 아니예요. 저는 아빠가 가지고 있는 패션업계와 여대에 대한 편협한 시선에 화가 났던 거에요~^^.”


다행히 전화의 목소리가 밝았고, 카톡의 문자에도 미소 표시가 보였다.


딸애는 아빠가 변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평가하였는지, 아무튼 자신이 왜 화가 났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덕분에 과연 공감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생각해볼 기회가 생겼다.


경청의 단계를 흔히 무시하기, 듣는 척하기, 선택적으로 듣기, 주의깊게 듣기, 공감하며 듣기의 5단계로 구분한다. 이 5단계의 구분을 보면 공감은 듣기의 매우 높은 수준으로서 매우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공감의 초보인 나에게는 무시하기에서 듣는 척하기로 나아가는 것도 큰 발전일 수 있다. 왜냐하면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어서 습관적으로 상대의 말을 받아치는 식으로 돌려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부분 상대방은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일단 형식적으로라도 아~ 그랬구나! 저런 어째요? 하면서 영혼없는 맞장구를 쳐주는 식으로의 행동만 해도 주변에서 꽤 대견하게 평가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짜 공감적 경청이 아니다.


공감적 경청을 하려면 상대방의 말에 진지하게 대응해야 한다. 상대방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의 눈높이와 욕구와 경험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 질문도 하면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이해를 하고 나면 비로서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공감할 수 있다.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아. 그래도 당신의 입장과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공감해라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게 된다.


딸애는 여성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우리에게 없다고 해도 좋았을 시절부터 한국 여성의 미래를 위해 헌신해온 여대에서 현대 여성의 삶에 메시지를 던지는 저명한 패션쇼가 열린 것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싶었던 거였다.


어제의 글을 읽은 또 다른 친구는 이건 NT와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하는 의견을 주었다. 아마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진지하게 듣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받아친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이기에 이것을 기질적인 이유로 볼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의미인 것 같다. 맞는 말이다.


심리적 특성과 상관없이 공감적 경청은 누구나 배워야 할 삶의 기술이고 그것은 배울 수 있는 태도이자 기술이다. 직업적으로 코칭을 할 때는 공감을 꽤 잘 하는데, 집에서는 쉽지 않다. 이것은 또 무슨 이유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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