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았는데 왜 보지 못했을까?

지난주에 모처럼 초대를 받은 즐거운 모임이 있었습니다. 무려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리는 행사였습니다. 약 100여명의 참석자들이 있었고, 입장할 때에 포토존에서 사진도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미리 배정된 테이블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고, 저녁식사가 제공되었습니다. 주최측에서 상당한 예산을 들여서 준비한 행사답게 메인요리는 스테이크였습니다. 여러 개의 포크, 나이프, 스푼 등 꽤 많은 식사 도구들이 넵킨에 둘둘 말려서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식사가 주가 되는 행사였다면 포크며 나이프 등이 미리 테이블에 가지런히 세팅되어 있었겠지요. 그런 경우에는 바깥쪽에 있는 것들부터 사용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세미나 도중에 세미나 장소에서 제공되는 식사이니 그런 형식을 따질 것 까지는 없었습니다.


저는 넵킨을 풀어서 오른쪽에 도구들을 모아놓고는 먼저 스프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빵에 버터를 발라서 역시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게 얼마 만에 호텔에서 하는 식사인지요!


그런데 바로 옆에 앉으신 분은 넵킨을 풀어서 포크며 나이프 등을 꺼낸 후에 그것의 일부를 접시의 왼편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속으로 식사 도구를 순서대로 쓸려고 세팅을 하시네. 아니 무엇을 그렇게까지 할 것이 있나 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옆에 분이 그러하니 저도 은연중에 주춤해져서 다음 요리는 어떤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식사는 즐겁게 진행되었습니다. 와인도 제공이 되었기에 다들 잔을 부딪히며 건배도 했고, 와인을 소재로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나누었습니다. 혼자 일때는 와인 한병을 여는 것이 고민이 된다고 하였더니 한 분이 자기는 2리터 정도의 벌크 와인을 구매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두고두고 오래 마신다고 알려주어서 저도 한번 확인해 볼 참입니다.


그날 처음 만난 분들이었지만 세미나도 즐거웠고, 식사도 만족스러웠는지 분위기는 상당히 활기찼습니다. 대화의 어느 부분에서 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저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런히 정돈하였던 중년의 신사분이 자신의 팔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니 그분의 오른손은 의수였습니다.


그분이 포크와 나이프를 옮긴 것은 자신이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왼쪽으로 옮긴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지런히 정돈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사용하기 편하게 위치를 바꾼 것이었지요.


그런데 왜 저는 그분이 포크와 나이프와 스푼 등을 식사예절에 맞게 정돈하였다고 생각하였을까요? 그리고 그분의 오른손이 불편하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을까요? 바로 옆에 앉아계신 분이었는데 말입니다.


사람의 인지 작용, 즉 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들이 많습니다. 뇌는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 오래 경험을 토대로 미리 만들어 놓은 세상을 해석하는 틀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스키마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늘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보는 것은 사실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나는 분명히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나의 귀로 선명하게 들었다고 주장할 때 조차도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았고, 듣고 싶은 것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는 문구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의 성급함과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경험하는 부끄러운 그러나 교훈이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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