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방에 바퀴가 없다면 얼마나 불편할까요? 팔이 아파서 이리저리 옮겨 들어야 하는 무거운 여행 가방에 바퀴를 달면 좋겠다는 참신한 생각을 하고 처음으로 시제품을 만든 사람은 블룸입니다.
그는 시제품을 만들고 신이 나서 애틀랜틱 러기지 컴퍼니 회장에서 가져갔는데, “이런 비현실적이고, 거추장스러운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도대체 누가 사고 싶어 하겠어?” 라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죽어버렸습니다. 이게 1958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도 1970년에 새도라는 사람이 가족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두 개의 무거운 여행 가방 때문에 고생을 한 기억에 영감을 얻어 바퀴달린 여행 가방을 만들었습니다. 역시나 놀랍게도 이 신박한 시제품을 스턴스, 메이시스 등 주요 백화점들이 모두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메이시스의 부사장이 이 제품의 진가를 알아보았고, 즉시 이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죠.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은 상상이 안되죠. 스마트폰이 만든 삶의 변화는 거대하고,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산업의 규모는 엄청난 수준일 것입니다. 2007년 애플이 처음으로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스티브 잡스의 천재성을 찬양하지만 실상은 아닙니다. 애플의 엔지니어들이 아이폰에 관한 구상을 잡스에게 설명했을 때 잡스는 지금까지 들어본 이야기 중에 제일 쓸데없는 이야기라며 심하게 폄하했습니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이 휴대폰을 컴퓨터로 바꾸는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꾸준히 설득하였고, 다행히 잡스가 자신을 생각을 바꾸었고, 그 뒤로는 열렬한 지원자가 되었기에 아이폰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위 이야기들은 매슈 사이드의 다이버시티와 애덤 그랜트의 싱크 어게인에 소개된 재미있는 사례들입니다.
종교의 역사에는 자신들이 세계관에 대한 확신이 너무도 지나쳐서 그것을 그저 자신들이 생각으로 여기지 않고 절대 진리라고 주장하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치 코끼리의 코를 만지면서 코끼리는 쭈글쭈글한 관이다고 말하는 생쥐처럼 말입니다.
종교인들의 확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알려주지 않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 그저 자신의 생각이고 판단일 뿐인데 그것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으면서 말이지요.
예수님은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고, 건강한 사람은 의사를 찾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죄인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기독인들은 종종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 즉 의인이 되었다는 복음이 주는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이 자기의 의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기억합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종교인들은 오히려 자기 확신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고 여기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종교인들은 그리 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의 옮음을 부정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영역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 생각의 유연함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언제든지 인정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그런 유연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도전하는, 그리고 힘있는 자들의 주장에 거침없이 대드는 반항아들의 신박한 관점과 아이디어를 응원합니다.
이건 꼭 설교조로 작성한 글이 되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