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만든 세상에서 산다. 화엄경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철학은 인간의 한계와 인간의 위대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나의 한계와 관련해서는 인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인간은 얼마나 작은지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 산다. 내가 보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내 마음이 해석하고 창조한 것을 본다. 그러니 실체와 거리가 멀 수 있다. 나의 위대함에 관하여는 마음을 바꿈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은 얼마나 유연한가?
인간을 구속하는 것도 마음이고, 때문에 해방시키는 것도 마음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상과 믿음의 허상을 깨트리려고 하였다.
이혼은 악한가? 선한가?
대상을 이렇게 바라보게 하는 가르침이 있다. 지금은 급속히 사상의 해체와 재구성이 이루어지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이혼에 대한 중립적 시각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을 것이다. 드라마 ‘신성한 이혼’ 역시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도전하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것이다.
이혼이 신성할 수 있다고?
우리들의 사연은 사연마다 사연이 다르고 아프다. 그래서 정형화하는 우리의 시각은 편협하기 그지없고 폭력적이다. 종교가 인간을 해방시키는 위대한 일을 하면서도 어떤 지도자들의 어리석음과 욕망으로 인해 인간을 억압하는 마음의 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중의 하나가 대상을 선과 악으로 보게 하는 가르침이다.
역사는 인간의 억압을 깨트리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나는 중세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고, 조선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고, 유신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고 다만 책으로 영화로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내가 아는 지식의 범위에서 지금의 시대는 지금의 시대 대로 인간을 억압하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적어도 그때보다는 나아진 듯하다. 그중의 하나가 결혼제도에 대한 생각들이다.
결혼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그리고 창조할 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혼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신성하다. 결혼은 상호 이익에 따라 계약하고, 이익이 종결되면 해지하는 관행적인 계약 관계가 아니다. 물론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있겠다. 역설적으로 결혼이 신성하므로 신성한 이혼이 존재한다.
나의 사상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자.
나의 욕심이 만들어낸 사상의 틀에서 해방되자.
다만 조심하렴.
너의 욕심을 채우고자 너의 어떤 사상을 배격하는 어리석음 범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