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앞마당에 보리수나무가 있다. 올해는 열매가 탐실하게 잘 열렸다. 토요일에 일이 있어서 교회에 왔는데 마을 주민 한 분이 보리수 열매를 따고 있었다. 저기요. 그거 관리하는 분이 계세요. 허락 없이 따시면 안돼요. 말씀드리니 아 그게 조금만 따 갈게요. 술을 좀 담그려고 하신다. 아무튼 따시면 안돼요. 하고는 돌아섰다. 아마 조금 가져가시겠지. 다음 날 관리하는 분에게 어제의 일을 말해주었더니 그냥 따 가시게 두어도 되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보리수 잘 안 먹어요. 어 그래 그럼 나도 가져가도 돼요? 하니 그러란다. 청을 담가도 되고, 술을 담가도 되고 겨울에 마시면 기관지에 좋다는 설명도 해준다.
그래서 잘 익은 열매를 가져왔는데 주변에 물어보니 보리수는 청이 잘 안 담가진단다. 그래서 장난기도 발동하여 술을 담갔다. 유튜브를 참고해서 설탕도 조금 넘었다. 며칠이 지나니 빨간 열매는 위로 뜨고 바닥에는 가늘고 하얀 설탕이 가라앉아있다. 그리고 술은 아주 약간의 붉은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달 정도 지난 지금은 제법 붉은색이 맛나 보이게 들었고, 어느샌가 바닥의 설탕 퇴적층은 사라지고 없다. 술병 안의 엔트로피가 증가한 것이다.
대학을 다니는 아들과 요즘에 저녁 산책을 하곤 하는데 이 일은 거의 버킷리스트에 적힐 만한 그런 항목이다. 지금까지 이래본적이 없다. 주로 2학년 때에 군을 가니 아들도 이제 군을 가야 한다. 그래서 가을 학기는 휴학을 하고 군을 갈까 생각하는 중이다. 아마 그래서일까 녀석의 마음과 태도도 조금은 달라져 보인다. 무조건 받아치듯이 거절하지 않고 그러죠 머 하는 식으로 대충 반응을 보이고 권유를 받아들이는 일이 많아졌다.
녀석은 수학을 좋아하고 공대를 다니기에 종종 아는 상식 선의 물리나 화학과 관련된 용어를 말하고는 질문을 해본다. 얼마 전에는 엔트로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아는 엔트로피는 무질서도이다. 아들이 무엇이라 설명을 하였는데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용어가 어려우면 기억하기 어렵다. 그런데 하나 알아들었고 먼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 이야기를 하였다.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되어있는데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해요. 죽음은 매우 보편적인 거죠. 에너지는 저절로 흩어지게 되어 있거든요. 생명은 매우 이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죠.
죽음이 보편적이고 생명은 특이한 것이라고? 나는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이 정상 내지는 보편적인 것이고,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그러고 보면 우주를 보아도 적어도 우리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생명이 존재하는 행성은 지구뿐이다. 물론 몇 백 광년 넘어 어디엔가 지구와 같이 생명이 가득하고 번성하고 있는 행성이 있을 수 있고, 가까이에는 목성의 어느 위성에도 생명의 흔적이 있을 수 있고, 화성에서도 지금은 아니라도 오래전에 생명이 있었다는 흔적 같은 것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발견된 것은 이 광활한 우주에 생명이 번성하고 있는 곳은 지구이다. 지구는 특이한 곳이다.
아들의 말을 들으니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보통의 흔한 일을 만나면 그러나 보다 한다. 하지만 특이한 일을 만나면 우리는 감탄을 하기 마련이다. 나는 얼마나 감탄을 하고 있는가? 살아있으되 생명을 가진 것이 너무 당연하여 심드렁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된다. 생명은 기적이다. 감탄하고 감사하고 기뻐함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