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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 필요할 때, 팬케이크를 굽는다.

애정하는 무협만화 열혈강호를 읽다 보면, 멋진 주인공들은 자기보다 센 상대를 만나면 무서워하거나 오늘 영 재수가 없다거나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무척이나 반가워한다. 비록 만화 속의 허구 세상이기는 하지만 성장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대결하는 그들이 좀 멋있다. 그들은 상대방이 최고의 비기를 사용하여 진심으로 싸움에 응해주면 고마워한다. 그것을 상대에 대한 예의로 여긴다. 이런 설정과 세계관이 마음에 든다.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나면, 당연히 기진맥진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면 그들은 어김없이 운기조식(運氣調息)이란 걸 한다. 이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보기에는 명상 같은 것을 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요즘의 무림 즉 비즈니스 전쟁터 내지는 삶의 전투에서도 명상 또는 마음 챙김 등을 꽤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두뇌는 2만 년 전과 동일한데, 외부의 스트레스 자극 형태는 완전히 달라져서 스트레스 조절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듣는다.


그래서 더욱 명상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공감을 얻는 듯하다. 문제는 명상이 제법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은 너무 쉬어서 어렵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바르게 앉아서 바르게 숨을 쉬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즉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있어야 하는데 이 일은 정말이지 어렵다. 우리의 전전두엽은 도무지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나는 어느 날엔가 팬케익을 굽는 일이 훌륭한 명상의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경험했다. 내가 하는 명상 방식은 다른 일을 하면서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정돈하는 것인데, 그렇게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시작한 일이 너무 복잡하거나 어려워서는 안 된다. 팬케이크 굽는 일은 난이도와 속도가 딱 적당하다. 일단 내가 하는 팬케익 명상을 대충 따라 할 수 있도록 자세히 작성해 보겠다.


먼저 머리가 복잡하고, 화도 좀 나고, 또는 기진맥진이다고 느껴질 때, 팬케이크 가루를 꺼내어 반죽을 시작한다. 적당량의 우유와 계란 2개를 넣고 휘휘 저어주면 된다. 부침개 반죽 수준의 걸쭉한 죽 정도의 농도로 만들어주면 된다.


다음은 프라이팬을 뜨겁게 가열하고 콩기름 등 식용유를 한 수저 정도의 양을 부어준다. 프라이팬을 휘휘 움직여서 팬에 골고루 기름을 묻히고서는 페이퍼 타울 한 조각을 떼내어 몇 겹으로 접은 후에  팬의 기름을 흡수한다. 이제 팬에 한 국자의 반죽을 부어준다. 그리고 불은 가장 약한 것으로 줄인다.


이제 명상의 시간이 왔다. 대략 3분 정도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다 보면 엷게 퍼진 반죽이 달표면처럼 기포로 가득 차게 된다. 대략 3분 정도가 걸린다. 충분히 기포가 만들어지면 케이크를 뒤집는다. 약간만 연습하면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팬을 싹 움직여서 공중돌기를 하여 팬케익을 뒤집는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2분 정도 기다리면 양면이 맛있는 갈색으로 구워진 팬케익을 맛볼 수 있다.


팬케익은 만들 때 대여섯 장을 만들어서 쌓아두고서 먹어야 또 맛있다. 처음 한 두장은 숙달하느라 조금 어렵다고 느끼겠지만 다음부터는 익기를 기다리는 3분의 시간이 딱 명상하기 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는데 케이크를 한 장 굽고 나면 다음 반죽을 붓기 전에 아까 기름을 흡수했던 페이퍼 타월을 이용해서 팬을 닦아주면 된다. 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매우 얇은 기름칠을 해주는 효과가 있다.


팬 케이크를 탑처럼 쌓은 후에 커피를 내리든지 차를 한 잔 우려서 같이 먹으면 허기도 면해지고 마음의 허기도 달래지는 느낌이 든다.


팬케익 굽기는 너무 오래는 아니고 조금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고 주의를 붙들어 줄 만큼의 적당한 일거리가 있어서 명상의 초보자에게 아주 좋다. 마음이 지칠 때, 당 떨어졌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뛰어나올 때 한번 구어보시라.


아 참 구운 케이크는 한두장만 먹고 다른 사람들 나눠주시는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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