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에는 급소가 있다. 그곳을 한 대 맞으면 얼마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아프다. 마음에도 급소가 있다. 상대방이 별다른 의도 없이 던진 말 한마디 또는 행동에 평소와 다르게 발끈하거나 심지어는 불같이 화를 내었던 경험을 해보았으리라. 마음의 급소는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본인도 알기 어렵고 심지어는 위치를 바꾼다. 신체의 급소를 공격당하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여러모로 신체의 급소보다 마음의 급소가 더 치명적이다.
어제도 그랬다. 나는 무엇을 권했는데, 상대방은 정말 별생각 없이 짜증을 내며 움직였다. 그는 자기의 욕구와 생각과 감정을 표현했을 뿐인데, 나는 복부에 결정타를 맞고 고꾸라지는 복서처럼 평정심을 잃고 자동적 반응으로 화를 내며 마음에 상처를 주는 둔탁한 말들로 상대를 공격했다. 안전하고 평안했던 분위기는 파괴되고 마음의 촉촉한 물기는 분노의 열기에 순식간에 말라버려 사막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말라버린 마음에 금방 물기가 차오르지만, 나는 그것이 어렵다. 감정의 유연성이 정말 떨어진다. 감정의 전환이 잘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얼마간 숨어 있을 동굴인데, 불행히도 늦은 저녁에 학습 모임 사람들과 줌 미팅이 약속되어 있기에 애써 표정과 목소리를 관리하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친절하고 진솔하고 지혜로운 그들과 대화는 말라 갈라진 나의 마음에 천천히 물기를 공급하였다. 그들은 그들도 모르는 중에 누군가를 구원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또는 관계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파산하여 더 버티지 못하고 자포자기하는 절박한 사람에게 실제적인 해결책이 필요하지, 친절하고 관심 어린 격려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대책 없는 격려자보다는 냉정한 해결사를 더 높이 평가하고 추구하는 그런 사람인지라 그저 대안 없는 관심과 위로하는 대화의 가치를 진정으로는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건 좀 너무 박하게 나를 평가하는 말처럼 읽히기는 하지만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것은 맞다.
말라서 죽어가는 마음에 비를 내리는 것은 친절한 말 한마디로도 가능하다. 해갈할 정도의 호우는 못되어도 기력을 되찾게 돕는 입술을 축이는 한 모금의 물은 될 수 있다. 생명은 마음에 있다. 우리는 언어로 날마다 구원받고, 누군가를 구원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