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길과 어려운 길
도널드 밀러는 그의 책 「천년동안 백만마일」에서 안데스의 마추픽추에 다녀온 이야기를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추픽추 트레일은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평소에 운동으로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매우 힘든 등산 코스라고 합니다. 뭐 죽음의 고통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한다니까요. 암튼 그는 어떤 계기로 잉카 트레일에 참여하게 되었고 몇 달간의 철저한 자기관리와 운동으로 극한 고통에 대한 대비를 하였죠. 그러지 않으면 등산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오는 모습을 여자 친구 앞에서 보여주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해발 3300미터에 위치한 쿠스코에 도착하여 고지대의 산소부족으로 인한 두통에 적응하며 하루 밤을 묵은 일행은 다음 날 마추픽추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가이드가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2가지 길이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강을 따라서 계속 올라가면 6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은 교역로만 쓰였고 순례를 가려면 잉카 트레일로 걸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불모의 계곡 위로 빽빽한 산림과 열대 우림이 있었고 그 넘어로 눈 덮힌 안데스가 보였습니다. 나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잉카족은 왜 편한 길을 놔두고 사람들을 먼 길로 가게 했을까요?’라는 질문에 가이드는 ‘황제는 알았죠. 마추픽추로 가는 여정에 고통이 더할수록 도착해서 그 도시에 더 감탄하리라는 걸 말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도널드와 그의 일행은 순례의 길을 택했습니다. 물론 중간에는 욱신거리는 다리를 기진맥진한 채로 끌다시피 걸으면서 내가 미쳤지 하고 후회했지만 말입니다.
마침내 꼬박 나흘 동안 고난의 길을 걷고서야 그들은 아침에 태양의 문에 도착했습니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다리는 욱신거렸지만 흥분하여 도저히 걸을 수 없어서 뛰었습니다. 일행은 안개가 자욱한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며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죠. 그리고는 가이드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완벽한 아름다움과 그것을 건설하였던 잉카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고달픈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천국은, 쉬운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는 다르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반대의 경험이 생각납니다. 지인들과 백두산 천지를 보러 갔던 여행이었습니다.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차오르는 천지의 광대한 모습을 가슴에 담고 우리는 여행을 떠났죠. 천지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는 날은 일년에 몇 일이 안된다는 가이드의 말에는 우리의 운을 점쳐 보기도 했습니다.
백두산에 도착해서 관리소의 중국인에게 몇 가지 주의를 들을 다음에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천지에 도착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깨끗한 천지를 보았습니다. 뭔가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죠.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바빴고 휴대폰을 꺼내서는 집으로 전화해서 ‘여기는 천지다’ 하고 통화를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휴대전화가 그렇게 선명하게 연결되다니! 그렇게 10여분을 있다가 재촉하는 가이드의 목소리에 끌려서 다시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날 제가 본 천지는 민족의 기상을 대변하는 그런 웅대하고 감개무량한 성지가 아니라 하나의 호수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산꼭대기에 그렇게 큰 호수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순례의 길을 선택해서 백두산 자락을 걸으며 그 흙과 풀과 나무와 바람을 느끼고,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가까스로 천지에 올랐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그 타는 갈증 때문에 허리 숙여 손으로 천지의 물을 떠서 한 모금 마시고 일어나 바라보았을 천지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요? 분명 도널드 밀러가 나흘을 걸어서 마추픽추에 도착하여 아침 안개 속에서 보았던 장엄한 아름다움이 주는 감격과 비슷한 그런 것이겠지요. 훗날 통일이 되면 그렇게 힘든 길을 선택해서 우리의 국토를 온전히 걸어 천지를 다시 보고 싶은 꿈을 가져봅니다.
인생을 사는 두 가지 방법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의 방법은 가급적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인기가 많겠지요. 또 다른 하나는 힘들고 불편한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분명 선택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진실입니다. 쉽게 얻은 것은 마치 공을 들여 만들지 않은 저급한 품질의 제품 같기 마련입니다. 힘들고 어렵게 한 일은 들인 노력만큼의 보상을 되돌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슬로우 푸드와 정크 푸드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학 때문에 지독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딸아이에게 좀 어려운 조언을 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학원을 다니고, 개인 과외를 받고, 인강까지 들으며 수학을 공부하는데도 도무지 아이의 실력은 늘지를 않았습니다. 수학에 대한 실패감이 너무 커서 아이는 자신은 가망이 없다며 엉엉 울기까지 하였습니다. 자기효능감이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차분히 아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너는 충분히 수학에 대해서 배웠고 들었어. 다만 너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거야. 그러니 이제 학원도 다니지 말고, 과외도 받지 말고, 인강도 듣지 말고, 혼자서 스스로의 힘으로 수학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해보는 것은 어떨까? 남이 해주는 설명을 들으면 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지. 하지만 정작 시험시간에는 너 스스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오롯이 혼자서 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해 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풀 수가 없었던 건 아닐까? 아예 몰라서 못 풀어서 틀린 것하고, 98퍼센트를 아는데 마지막 2%를 몰라서 틀린 것도 결과는 똑같이 틀린 거야. 너는 후자 인 것 같아. 아이는 처음에는 잘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도 안되는데 어떻게 혼자서 하라고 하느냐 말도 안되는 소리다 라며 화를 내었습니다. 다행히 며칠 후에, 생각해보니 아빠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아. 그렇게 해볼께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기적처럼 아이는 몇 주 뒤에 엄청난 자신감을 얻은 얼굴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힘들기는 하지만 문제를 푸는 힘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이죠. 그 뒤로 아이는 몇 개월 동안 혼자서 매일 몇 시간 이상 수학 문제를 푸는 노력을 했고, 상당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길이라면 평탄하고 쉬운 길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술술 잘 풀려서 풍년의 시절처럼 한 알의 콩을 심었는데 30개, 60개, 100개의 콩을 얻는 일들이 많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지만 만일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뭐를 해도 막히고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불평하거나 낙심하지는 말자는 다짐을 합니다. 그 힘든 고비를 견디어 내고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이 바라보게 되고 누리는 인생의 행복과 감사는 쉬운 길만을 걸어온 사람이 느끼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지금 힘든 과정을 겪고 있으십니까? 힘내십시오. 이겨내십시오. 힘든 만큼 당신은 큰 보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당신의 노력은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