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이 들리기 시작한지 몇 년이 되었다. 몇 년 전에도 이명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어라 이게 무슨 소리지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어떤 배경 소음처럼 계속 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분명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아도 똑부러지는 설명이나 처방을 알려주는 글은 없었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기에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는 지낸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엄청 대단한 큰 사고는 갑자기 발생하지 않고 이미 그 전에 사고의 징조를 알려주는 사건들이 29번이 있었고, 또 그 전에는 소소한 일들이 300번이 있었다는 통계적 주장이다. 그래, 이명을 우습게 보면 안되지 하는 마음으로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았고, 다른 이명 전문 한방병원에 가서도 진찰을 받아보았다. 결론은 이유를 알 수가 없고 다만 추정하는 것은 노화로 인해 청력의 감퇴하였고 그로 인한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받아들이고 살기로 했다.
이제는 나이를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늙어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것을 느낀다. 글이 약간 억지스러운 연결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늙어가면서 청력도 떨어지고 시력도 안좋아진다는 것을 신체가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경험한다. 10년이나 20년 전의 내가 어떠했는지 알 수가 없으므로 그저 지금의 나를 바라보면서 알게되는 것은 사람들의 말을 잘 못듣고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잘 못보게 만드는 어떤 심리적 기제가 내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서를 공부하며 배운 사실 하나가 힌트를 주었다. 타인의 정서를 알아차리고 잘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책임감 때문이라는 점이다. 조직이나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 나이가 되면서 아마도 이 책임감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호소할 때 나도 모르게 방어적이 되고 심할 때는 비난을 받는다는 느낌을 경험하기도 한다.
내 책임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동등한 관계이다라는 점을 의식적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어제도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내와 딸이 하는 말이 내가 달라졌다고 한다. 비결은 아내와 딸이 기분이 안좋아서 짜증을 내거나 불평을 할 때, 나는 마치 상관없는 친절한 동료나 친구들이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의 속마음 진심으로 그러하려고 노력한다. 얼핏 무책임해 보이는 나의 행동인데 오히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경험한다.
무책임한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도 잊지는 말자. 그리고 속 편히 자유롭게 살자. 그래야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반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