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건의 몇 주기를 기억하려는 까닭

나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었던 그러나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논쟁을 일으켰던, 그리고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는 당하지 않은 사람은 알기 힘들 정도의 큰 폭력과 고통이었을, 그런 사건들이 발생한지 1년이 지났고 다시 해가 바뀌어 2년이 지났고, 다시 해가 바뀌어 무상히도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기억하려는, ‘어떤 사건 몇 주기에’ 라는 문구를 종종 읽는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려는 것인가?


혹은 무엇을 다짐하려는 것인가?


큰 사건이 벌어질 때, 우리는 큰 악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그 악이 비록 큰 권력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싸워서 이겨서 그나마 조금 더 살만한, 조금 더 좋은, 조금 더 합리적인 세상을 만들어야지 하고 다짐한다.

하지만 나와 상관없는 먼 곳에 있을 그 악에 대하여 분을 내는 것은 약간의 위로가 될지는 몰라도 큰 쓸모가 있지는 않다. 그리고 반문해본다. 그 악은 누구일까? 그 사건과 관련된 그 조직이나 기관 혹은 윗선이 악일까? 세상에는 그런 악질도 있기는 마련이지만, 개인적인 사귐이 있는 경우가 되면 한 개인이고 나와 같은 좋은 사람들임을 알게 된다. 다만 좀더 깨어있지 못했고 진지하게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다라고 주장하는 의견을 많이 듣는다. 사람의 의사결정과 행동은 시스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래서 한 개인을 탓하기 보다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다만 영향을 주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개선할 뿐이다라는 철학을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지 개인의 결정력과 행동에 대한 책임과 존엄성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니다.

일을 도모하기는 어려워도 누구라도 되는 일을 방해하거나 저지할 수 있는 힘과 방법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나는 어떤 사건 몇 주기가 현장에서 일을 담당하고 처리하는 우리들의 책임을 다시 자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결정권자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내가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하면 큰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적어도 거부하거나 협조하지 않거나 그건 아닌 것 같다 라고 발언할 수 있는 힘은 누구에게도 있다. 위압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하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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