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변인이 목적변인일 수 있다.

선한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악한 사람들이 잘되고 평안하고 장수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악한 사람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통계는 모르겠으나 언론에서 혹은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된다. 그러면 깊은 자괴감과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는 묻게 된다. 정말 신은 존재하는가? 혹은 이게 다 머람? 나 혼자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보아야 다 소용없어. 그리고는 실제로 유턴하여 삶을 방식을 바꾸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인간이므로 누가 누구를 악하다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정죄의 관점에서 말하지는 않겠다. 그저 우리에게 있다고 믿어지는 양심에 근거하여 생각해보고 나에게 질문한다. 네가 너의 기준으로 선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잘살고 평안하고 장수하기 위해서인가? 그런데 살아보니 선하게 사는 것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 변수가 아님을 깨닫고는 잘살고 평안하고 장수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선행변인을 찾아서 그렇게 살고자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많이 틀렸다. 선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려는 선행변인이 아니다. 그 자체가 목적변인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빨래하는 동안에는 독서가 유난히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