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를 떠오르면 어렸을 적 집 앞 화단에서 진하게 풍겨오던 그 향기가 느껴진다. 2층짜리 아담한 단독주택 안에는 집보다 더 높이 자란 은행나무, 작은 단풍나무, 수세미가 뒤엉켜 자라고 있었고 집 밖 담 아래로 자리 잡은 화단은 계절마다 다른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던 꽃은 장미였는데 엄마도 가끔은 장미를 꺾어 식탁이나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했다. 그런 날이면 장미 몇 송이로 평범했던 우리 집이 특별해진 것만 같았지.
백만 송이 장미원의 핑크장미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테다.
장미는 플라워 샵에서도 수많은 꽃을 대표하는 얼굴로 꽃다발과 꽃바구니를 구성하는데 가장 인기를 독차지하는 아이가 아닌가. 그리스 로마신화에도 장미는 아프로디테, 즉 미의 여신 비너스의 꽃으로 여겨져 비너스의 아름다움과 사랑을 상징하는 매력적인 녀석이다.
누구보다도 장미를 사랑하고 ‘로즈’라고 불리던 그녀....
Josephine de Beauharnais, Keizerin der Fransen
나폴레옹의 조세핀
조세핀은 어린 16세의 나이에 보아르네 자작과 결혼하여 두 남매를 낳지만 프랑스 대혁명 때 남편이 사형당하며 그녀도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된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의 몰락과 함께 석방되고 순식간에 아름다운 미모로 파리 상류층에서 이름을 날린다. 사교계의 화려한 꽃 조세핀에게 순진한 촌뜨기 나폴레옹은 빠져들고 그 둘은 결혼,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면서 그녀는 황후가 된다. 곧 나폴레옹의 전성시대가 시작되며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조세핀은 파리 근교 말메종 성을 구입하고 늘 꿈꾸던 장미정원_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꾸민다. 사치와 낭비가 심했다더니 말메종 정원에도 약 300여 종의 식물을 심고 황후로서 능력을 발휘해 세계 곳곳 200여 종의 값비싼 장미를 수입해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 또한 다양한 식물과 꽃에 대한 연구를 장려하고 기록하는데 열정을 아끼지 않는다.
말메종 궁전
조세핀의 장미를 그린 피에르 조셉 르두데
일찍부터 예술에 대한 재능을 선보인 그는 여러 예술가을 사사하며 기초기법을 익히게 된다. 관심 있는 분야는 식물학과 자연. 영국 왕립 큐가든에서 그림 실력을 쌓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전속 꽃 그림 화가로 활동하게 된다. 왕실의 후원을 받기 시작한 그의 그림은 꽃에 대한 미적 표현을 넘어 과학적이고 정밀한 분석으로 발전한다. 마리 앙투아네트 이후 말메종 정원을 가꾸던 조세핀의 눈에 르두테가 들어온다. 르두테는 조세핀의 말메종 정원에서 자생하는 많은 종류의 식물을 다루고, 새로운 스타일과 기법을 탐구하여 그의 작품은 더욱 풍부해진다. 이러한 경험은 167종의 장미와 그 변종을 담은 화집 《장미! Les Roses》 시리즈를 작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은 그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작품은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결과적으로 조세핀은 르두테가 예술가로서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준 중요한 인물이 되었으니 그의 예술적 여정에 탄탄대로를 열어 준 셈이다.
<피에르 조셉 르두테의 작품들>
18~19세기 식물세밀화가이자 보태니컬아트 선구자였던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책으로 출판되어 꽃과 장미를 사랑하는 이들이 찾는다. 인테리어 액자 및 다양한 소품의 인쇄 이미지 활용되어 우리 곁을 장식하며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 장미 개발에도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 지금 우리가 다채로운 장미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일부는 그 덕분이니 르두테에게 황송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