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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곤증 Jun 03. 2019

자본주의에 기생하는 모두에게

영화 <기생충>을 보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생충 (寄生蟲) [기생충]

[명사] 1. 다른 동물체에 붙어서 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벌레


도시에 산다는 것은 아스팔트로 뒤덮인 땅을 밟고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 안에서 생활하며 조각조각 편리하게 덜어낸 식물을 주변에 두며 위안 삼는 것

자연 속에 인간이라는 조각이 놓인 느낌보다는

덜어낸 자연을 곁에 두게 되면서 벌레는 점점 애초에 우리와 공생하는 것들이 아닌 모습이다

해충박멸을 외치는 업체의 로고를 건물마다 박으며 벌레들과 떨어져 지낼 수 있는 쾌적함을 강조한다

이토록 멀어진 벌레는 벌레라는 단어의 형태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데 각종 신조어에 붙는 -충 이 그것을 입증한다

진지충, 맘충, 무뇌충, 지잡충 등 혐오하는 특징의 뒤에 벌레를 칭하는 충을 붙여 혐오의 시너지를 완성한다


영화의 제목 기생충은 벌레의 종류 중 하나를 칭하는 명사일 뿐이지만 이미 혐오의 끝판왕이 되어버린 -충에서

그 뉘앙스는 풍겨져 온다



영화는 기택(송강호) 가족이 사는 반지하로 시작한다

지상과 연결된 작은 조각인 반지하의 창문과 그 작은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말리려는 빨래 거리들을 보여주고 방 안으로 내려온다

이미 땅바닥부터 시작된 영화의 장면이 그보다 아래로 내려가며 기택 가족의 게으르고 궁핍한 일상을 보여준다

장남 기우(최우식)는 친구에게서 재물을 가져다준다는 수석을 선물 받고 부잣집 과외를 소개를 받아 영어 과외를 하게 된다 이내 동생 기정(박소담)과 엄마, 아빠까지 그 집에 취직을 시켜 말 그대로 온 가족이 기생을 시작한다

땅바닥보다 아래 반지하에서 방역차의 소독약을 한껏 마시고도 살아남아 기어코 올라간 윗동네의 박사장 집을 제 집처럼 여기며 잠시 간과한다 그들의 원래 자리를


영화가 특유의 유머 코드를 뒤집으며 관객을 공포와 긴장으로 몰아가는 것은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난 날의 밤,

번개가 치며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

기택의 가족이 기생하기 위해 내쫓은 박사장 네의 원래 가정부였던 배우 이정은이 찾아온 순간으로 분위기 전환을 맞이한다

그 등장과 함께 들킬까 조마조마했던 난장판이 된 거실을 뒤로하고 그 아래 지하실의 더 아래 지하 벙커로 관객들을 끌고 갔을 때, 그곳에서 마주한 가정부의 남편과 그 공간의 모습은 거실의 난장판이나 기택 가족의 반지하와는 견줄 수 없는 충격을 가져다준다

지상의 현실은 잊은 지 오래로 지하 벙커 안에서 그 작은 현실에 만족하며 박사장에게 남모를 감사를 전하는 기생충

잠시 스스로의 자리를 잊었던 기우는 박사장 집에서 겨우 몰래 도망쳐 아래로 아래로 끊임없이 뛰어내려 가면서

폭우의 물살에 잠기는 본인의 발을 바라본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윗동네와 아랫동네에 그 양이 다를까

박사장 가족에겐 캠핑의 밤을 망치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비가

기택의 가족에겐 집을 물에 잠기게 하고 온 몸을 젖게 만든다


햇살을 가득 받아 바싹 말리지 못한

언제나 반쯤 젖은 듯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온전히 그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지상에서 발버둥 치며 눈과 귀를 속여도 감출 수 없는 반지하의 냄새로 박사장의 얼굴에서 그 혐오를 확인했을 때 기택은 이성을 잃는다

계획 없이 사는 기택이 계획에 없던 일을 저지른 뒤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또한 계획에 없을 법한, 그가 혐오로 바라본 지하 벙커

그곳에서 아들이 보게 될지, 봤는지도 알 수 없는 모스부호로 편지를 올려 보낸다

현실의 저변에서 우리가 지나치는 수많은 지하 벙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일까

기우는 편지와 함께 아버지가 지하 벙커에 있음을 확인하고 계획을 세운다

돈을 벌어 저 집을 사고 만다 그리고 아버지를 다시 지상으로 이끌어낸다

이 판타지 같은 결말은 기우의 판타지 같은 계획임을 알리며 영화가 시작한 반지하의 작은 창문으로 마친다


반지하에서 시작해 지상의 인물들에게 기생하던 기생충들은 또 다른 숙주에게 기생하며

자본주의 안에서 혐오 혹은 무관심이라는 소독약을 마시며 살아남는다

혐오와 무관심의 지독하고 은은한 냄새를 풍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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