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줄임표(...) 뒤에 숨겨진 감정의 구조 신호
형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카톡방이 하나 있습니다. 여느 때처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깜짝 놀랐습니다.
좋아하는 형님 한 분이 최근 제 표현에서 이상 기류를 감지했다며 피드백을 주신 겁니다.
요새 너, 표현에 말줄임표(...)가 부쩍 늘었네?
형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전의 당당함과 명확함은 어디 가고 요즘 제 말 끝에는 흐릿한 점들만 가득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최근 제가 썼던 글들을 훑어보았습니다. 전혀 인지하지 못했는데, 정말 거의 모든 문장 끝에 ‘...’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유독 최근에 많아졌더군요. 참 신기하고도 서늘한 발견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최근 한두 달 사이, 제 마음에는 수많은 고민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의문이 많아졌고, 확신은 사라졌으며 자신감은 떨어졌습니다. 에너지가 충전되지 않은 채 쉽게 감상에 젖곤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타인의 눈치를 살피기도 했습니다.
저는 본래 재치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입니다. 밝은 웃음과 열정이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는 심리적 ‘잽(Jab)’을 무수히 맞고 있었습니다. 가끔 힘들거나 지치는 정도겠지 하며 무심코 넘겨왔던 것들이 사실은 방어 기제를 무너뜨리고 있었던 겁니다. 권투에서 잽은 결정타는 아니지만, 서서히 대미지를 누적시키는 기술입니다. 임팩트가 크지 않으니 당장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저는 조금씩, 아주 깊게 멍들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회복탄력성 진단(KRQ-53) 결과도 이를 증명했습니다. 1년 전보다 나빠진 점수를 보며 그저 피곤해서일 거라 여겼는데,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었음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낮은 에너지 상태가 방치되면서 제 문장은 길을 잃고 말줄임표 뒤로 숨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징징거리는 것도, 누군가에게 죽는소리하는 것도 질색입니다. 제가 던진 자신감 없는 표현에 누군가 화를 내는 상황은 더더욱 싫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심리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의 ‘감정 입자도(Emotional Granularity)’라는 개념을 만났습니다.
감정 입자도란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세밀하고 구체적인 단어로 구분해내느냐를 뜻합니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이 입자도가 정교합니다. 제 문장에 늘어난 말줄임표는 어쩌면 제 감정의 게으름이자 방치였습니다. '힘들다'거나 '답답하다'는 모호한 안갯속에 저를 가두어 둔 것이죠. "감정에 이름을 붙이라"던 조언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중에서
이제 저는 문장 속 말줄임표를 지우고, 그 자리에 선명한 단어들을 채워 넣으려 합니다. 그것이 단순한 '피로'인지, 인정받지 못했다는 '서운함'인지, 혹은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인지. 흐릿한 안개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 그것이 제가 선택한 첫 번째 변화입니다.
형님이 발견해 준 저의 '...'은 저에게 보내는 마지막 구조 신호였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징징거림이 아닌, 나를 살리는 '정확한 고백'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여러분의 문장에는 요즘 어떤 문장부호가 많아졌나요? 혹시 저처럼 '...'이 늘어났다면, 그 안개를 걷어낼 단어 하나를 먼저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참고: 리사 펠드먼 배럿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세분화해서 명명하는 것만으로도 뇌는 그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습니다. 모호한 감정은 두려움을 유발하지만, 이름 붙여진 감정은 다룰 수 있는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