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져 버린 사람의 이야기
밤 10시까지 일을 했다.
야근을 한다고 해서 꼭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다.
팀원 중 누군가 처리해도 되는 일이었다.
조금 더 천천히 가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내가 했다.
내가 하면 빨리 끝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중간에 맥락이 어긋날 일도 없다.
어디서 시간이 걸릴지 알고 있고,
어디는 생략해도 되는지도 이미 안다.
그래서 내가 직접 한다는 결정이 쉽게 나온다.
시키고 설명하고, 피드백을 주고,
다시 고쳐서 가져오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냥 내가 처리하는 편이 훨씬 단순하다.
이 선택은 대체로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점점
“시키느니 내가 한다”는 쪽으로 기운다.
팀원을 못 믿어서라기보다는
내가 이 일을 잘 알고 있어서다.
어디서 막힐지,
어디를 건너뛰어도 되는지,
어디는 절대 손대면 안 되는지까지
파악이 되어 있다.
문제는 이 판단이 반복될 때부터다.
내가 하면 빨라진다.
그래서 또 내가 한다.
그러다 보면
팀은 더 빨라질 기회를 잃고,
나는 혼자 처리하는 일이 늘어난다.
이 구조는 어딘가 이상하지만
회사에서는 꽤 자연스럽게 굴러간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는 팀장인 내가
일을 더 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조직 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라면
이 정도는 감수하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실무를 손에서 놓으면
내가 점점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 같고,
실무를 계속 쥐고 있자니
생각해야 할 시간은 늘 뒤로 밀린다.
역할은 위에 있는데,
몸은 아래에 붙잡혀 있는 느낌이다.
나는 늘
그 중간쯤에 서 있다.
사실 나는
큰 그림을 오래 붙잡고 고민하는 쪽보다
빠르게 이것저것 실행해 보는 걸 더 좋아한다.
계획을 길게 세우기보다는
일단 해보고,
고치고,
다시 움직이는 방식이 편하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리더라는 자리에 맞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조직이 기대하는 팀장의 모습과
내 마음이 편하게 일하는 방식이
조금 어긋나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오늘도 일을 마치고 나서
크게 지치지는 않았다.
다만
이렇게까지 서둘러 끝내고 싶었던 마음이
일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상사의 혹은 다른 누군가의 요청에
조금이라도 빨리 답하고 인정받고 싶었던
내 욕심이었는지,
그게 잠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