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9]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도망이다

40대에 퇴사한다는 말이 가벼워지지 않으려면

by 봄날의 초원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을 곁에서 본다.

대개 그 고민은 오래 이어진다.

말은 조심스럽고, 표정은 지쳐 있다.

대화는 늘 같은 지점에서 멈춘다.

“이제는 다른 걸 좀 해보고 싶다”는 말에서다.


퇴사는 도피처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퇴사는 무언가를 끝내는 선택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시작에는 방향이 필요하다.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고,

외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경우 퇴사는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계산의 문제다.


“퇴사하고 좀 쉬면서 앞날을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정말 앞날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회사를 다니면서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출퇴근길에도, 회의가 끝난 저녁에도,

주말의 공백 속에서도 생각은 가능하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결정을 미뤄왔을 뿐이다.


오히려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가

생각하기에는 더 나은 조건일지도 모른다.

생활이 유지되는 상태에서는

불안에 쫓기지 않고 선택지를 비교할 수 있다.

퇴사 이후의 휴식은

생각을 정리해 주기보다는

막연한 불안을 키우는 경우가 더 많다.


40대의 퇴사는 꿈을 좇는 선택이 되기 어렵다.

이 나이에 필요한 건 이상적인 미래상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정확히 바라보는 일이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이걸 구분하지 못한 퇴사는

같은 문제를 다른 장소에서 반복하게 만든다.


회사에서 맡았던 역할과

그 일을 혼자서 해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조직 안에서는 늘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

기획 뒤에는 실행이 있었고,

실행 뒤에는 관리가 있었다.

우리는 그 구조 안에서의 일 인분 몫을 맡았을 뿐이다.


퇴사를 하면 그 구조는 사라진다.

그때서야 내가 정말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 구분된다.

이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을 건너뛴다.

회사에서 ‘내가 했던 일’과

회사 밖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간극이다.

조직에서는 내가 담당자였지만,

밖에서는 내가 전부가 되어야 한다.

이 차이를 가볍게 보면

퇴사는 곧바로 현실의 무게로 되돌아온다.


무언가를 찾고 나가는 것과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나가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이동이자 성장이고,

후자는 도망이고 답습니다.

탈출은 잠시 숨을 돌리게 해 줄 수는 있어도

다음 방향을 정해주지는 않는다.

방향 없는 이동은 결국 같은 자리에 돌아온다.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을 보며

나 자신의 미래를 겹쳐 본다.

언젠가 나 역시 흔들릴 수 있다.

다만 그때만큼은

도망치듯 나오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자유가 아니라

불안을 다른 형태로 바꿔놓을 뿐이니까.

작가의 이전글[버팀8] 결국, 버틴 시간이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