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 퇴사한다는 말이 가벼워지지 않으려면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을 곁에서 본다.
대개 그 고민은 오래 이어진다.
말은 조심스럽고, 표정은 지쳐 있다.
대화는 늘 같은 지점에서 멈춘다.
“이제는 다른 걸 좀 해보고 싶다”는 말에서다.
퇴사는 도피처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퇴사는 무언가를 끝내는 선택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시작에는 방향이 필요하다.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고,
외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경우 퇴사는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계산의 문제다.
“퇴사하고 좀 쉬면서 앞날을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정말 앞날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회사를 다니면서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출퇴근길에도, 회의가 끝난 저녁에도,
주말의 공백 속에서도 생각은 가능하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결정을 미뤄왔을 뿐이다.
오히려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가
생각하기에는 더 나은 조건일지도 모른다.
생활이 유지되는 상태에서는
불안에 쫓기지 않고 선택지를 비교할 수 있다.
퇴사 이후의 휴식은
생각을 정리해 주기보다는
막연한 불안을 키우는 경우가 더 많다.
40대의 퇴사는 꿈을 좇는 선택이 되기 어렵다.
이 나이에 필요한 건 이상적인 미래상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정확히 바라보는 일이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이걸 구분하지 못한 퇴사는
같은 문제를 다른 장소에서 반복하게 만든다.
회사에서 맡았던 역할과
그 일을 혼자서 해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조직 안에서는 늘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
기획 뒤에는 실행이 있었고,
실행 뒤에는 관리가 있었다.
우리는 그 구조 안에서의 일 인분 몫을 맡았을 뿐이다.
퇴사를 하면 그 구조는 사라진다.
그때서야 내가 정말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 구분된다.
이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을 건너뛴다.
회사에서 ‘내가 했던 일’과
회사 밖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간극이다.
조직에서는 내가 담당자였지만,
밖에서는 내가 전부가 되어야 한다.
이 차이를 가볍게 보면
퇴사는 곧바로 현실의 무게로 되돌아온다.
무언가를 찾고 나가는 것과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나가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이동이자 성장이고,
후자는 도망이고 답습니다.
탈출은 잠시 숨을 돌리게 해 줄 수는 있어도
다음 방향을 정해주지는 않는다.
방향 없는 이동은 결국 같은 자리에 돌아온다.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을 보며
나 자신의 미래를 겹쳐 본다.
언젠가 나 역시 흔들릴 수 있다.
다만 그때만큼은
도망치듯 나오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자유가 아니라
불안을 다른 형태로 바꿔놓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