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국화 May 18. 2021

괜히 뜨끔하였던 책 제목

돈 있고 꿈 있고 남편 있는 그녀


'북코스모스'( : 지식인을 위한 도서문화 플랫폼)로부터 신간도서를 제공받아 평가의견을 제출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내 입맛에 맞는 책을 골라 읽을 수 없으니 독서의 즐거움은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었지만 다양한 분야(어쩌면 스스로는 절대 생각지 못했을 분야를 포함하여)의 신간도서를 접할 수 있다는 점, 꾸준히 글을 읽고 글을 쓰게 된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북코스모스는 나에게 '도서평가단 평가위원'이라는 과분한 이름과 함께 한 달에 평균 두 권 정도의 책을 제공해 주고 있다. 책을 제공받으면 정해진 기한 내에 제공받은 책을 완독하고 평가단 이름으로 리뷰를 남긴다. 리뷰까지 남긴 책은 추천하고 싶은 지인들에게 선물하곤 하는데, 최근 평가 대상 도서를 한 권 받은 후 고민에 빠졌다. 책 속에 담긴 메시지는 누군가에게 몹시 선물하고 싶은데 제목 때문에 오해를 살까 봐 선뜻 선물하지 못하겠다. 솔직히 나도 이 책을 받자마자는 조금 발끈했었으니까 말이다.  




누구에게 들킬까 봐 배송받자마자 책을 숨기기에 급급하였던 이 책의 제목은 바로 "돈 없음 꿈 없음 남친 없음"이다. 헐, 나 돈 없고 꿈 없고 남친 없어 보여서 위안받으라고 주는 책인가?

아무도 뭐라 안 하는데 괜히 뜨끔해서 책 제목이 보이지 않게, 뒤집어서 가방에 넣었다.



다행히 이 책은 돈 없고 꿈 없고 남친 없음에 관한 신세한탄을 담은 책이 아니다. 돈 있고 꿈 있고 남친 있는 여자의 성공담, 자기계발서이다.



저자 스즈키 미호는 현재 자신이 경영하는 대표이사로 꿈은 물론 남친 아니라 남편도 이미 있는 돈 있고 꿈 있고 남친(편) 있는 여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서른이었을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돈도 없고 직장생활은 매너리즘에 빠져있고 목표였던 결혼 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한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문화가 비슷하여 몇 살엔 취직을 하고 취직을 했으면 몇 년 돈을 모아 결혼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있었다.

그런 사회적 압박에 끌려 살면서 남에게 이상해 보이지 않는 삶을 추구하다가 거기서 실패했을 때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수동적인 삶에 실패해서 능동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 저자는 이제 돈도 있고 꿈도 있고 남친(아니라 남편)도 있다.


솔직히 진부한 성공담, 자기계발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수동적인 삶이 실패로 돌아왔을 때 오히려 능동적인 삶을 시작했던 저자의 모습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삼십 대 후반에 미혼인 나도 수동적인 삶 부문에서는 실패자다.

그런데 수동적인 삶에서 실패하고 나니 오히려 내 삶은 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었다.

직장을 선택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결혼과 육아에 적합한 회사인지, 꽤 괜찮은 배우자로 보일만한 직장인지 먼저 생각했었는데 실패자가 된 후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이직을 할 수 있었다.

집 있는 남편을 찾는데 실패하니 내가 벌어 내 돈으로 집을 사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이직을 하고 내 힘으로 집을 사고 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물론 아직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남자 없다는 말에 당연히 꿈 없고 돈 없음까지 포괄시키는 어떤 사람들의 시선이 오늘도 몹시 불편하고 가끔 불쾌하기까지 하던 차에 돈 있고 꿈 있고 남친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위로가 되었다.


남들 사는 대로 살아서는 평균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물론 평균의 삶을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들 사는 대로 구색을 맞춰줘야 '실패하지 않은 삶'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구색만 맞춘 삶은 '성공한 삶'이라 평가받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구색을 맞추는데 실패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어차피 이리된 거 '성공' 한 번 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러닝머신에 한 번 올라타면 멈출 수도 없고 빨리 달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속도를 맞추지 못해 러닝머신에서 떨어졌으면 이 기회에 헬스장을 벗어나 앞으로 달려보자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돈 있고 꿈 있고 남편 있는 이 여자, 스즈키 미호를 소개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실험은 응원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