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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Jun 30. 2021

김민섭이 쏘아올린 작은 공

김민섭, "당신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

2021년 내가 사는 지구라는 행성에서는,

내가 느낀 오늘의 불편함은 갑질이라고 거품을 물면서 나보다 조금이라도 약한 사람에게는 무례할 권리를 행사하고,

나보다 한 발짝 먼저 나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특혜, 불공정이라고 거품을 물면서 나는 축지법 수준의 요행을 바라고,

사회정의를 외치지만 사실은 내 밥그릇을 챙기고 있는 그런 병이 퍼져나가고 있다.

최초에 이런 병자들은 어쩌다 한 둘이었지만 코로나만큼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는 이 내로남불병은 확진자보다는 여전히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모든 감염병이 그러하듯, 극소수인 감염자에 시선이 집중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종족인 사람에게 애정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뾰족하게 가시를 세우며 스스로를 위한 방어라고 여겼던 나에게 사람의 가치에 대해 알려 준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추천사를 보고 이 책의 리뷰단 모집에 신청하였다. 나의 마음 속에 꺼져가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되살리기 위해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지만 속는 셈 치고.


68페이지까지 이어지는 저자의 헌혈기는 미안하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책 한 권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살아나기엔 내가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나 보다. 이제 안되나보다라며 나의 감성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기로 결심하였다. 내돈내산 책이었다면 이미 판결을 내린 마당에 책읽기도 멈추련만, 책을 제공받은 서평단이다보니 어찌되었든 완주를 해야했다.

 하지만 영혼없이 넘긴 책장 덕분에 꺼져가던 불씨가 살아났다. 아마 추천사를 썼던 사람이 나를 알았다면 이리 말하였겠지. 거봐, 한 번 믿어보라니까.    


이어지는 '김민섭 찾기' 에피소드를 보며 나는 오래전 한 SNS 이용자들이 만들었던 '달콤박스'가 생각났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공간'이라는 가치를 표방하던 SNS가 있었다. 다른 SNS처럼 나를 과시하고 행복한 척 할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완전히 익명으로 운영되었고, 친구맺기와 같은 기능을 없앴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타인이 쓴 글을 읽고 댓글을 써야 한다. 말하기 전에 먼저 들으라는 의도에서 만든 기능들이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익명의 공간이 공감과 위로를 표방한다는 것을 불신했다. 익명의 공간은 나와 같은 종족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실망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익명 게시판은 언제나 나와 같은 소속의 사람들이 얼마나 비겁하고 이기적인지 확인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그런데 익명의 착한 공간이 가능했다. 사람들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어떤 이들에게 따뜻한 아침인사를 건네고, 하루가 고단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달기 시작했다. 익명이지만 악플이 없는 곳, 그런 게 가능했다. 그렇게 공감과 위로, 응원을 이어가던 사람들은 성에 차지 않았는지 사는 곳 근처의 지하철역 물품보관함을 장기대여하여 '달콤창고'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용자들은 달콤창고에 간식, 무료용품등을 넣기 시작했다.


'발렌타인데이인데 초콜릿 못 받으신 분들, 달콤창고에 초콜릿 가득채워 두었습니다. XX역에서 가까우신 분들, 맛있게 드세요. ', '여행가서 사온 기념품, 선착순 3명에게 드립니다. 달콤창고에 둘게요.', '사은품으로 만든 거울 무료나눔합니다.' 라고 글을 남기면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며 또 작은 선물을 넣어놓고는 하였다.


달콤창고는 여러 사정으로 사라졌고 SNS도 공감과 위로라는 원래의 기능을 잃어가서 나도 탈퇴를 하고 말았다. 역시나 익명공간은 익명공간일뿐임을 또한번 확인하고 실망하는 것으로 우리의 인연은 끝났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따뜻한 본성으로 움직이던 익명공간이 있었음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저자의 김민섭 찾기를 보며 나 또한 잊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따뜻한 본성을 가지고 있고, 결국 지금까지 인류가 멸망하지 않은 것은 따뜻한 본성을 가진 대다수의 조용한 사람들 덕분이다. 이 책은 소수의 나쁜 놈들에게 가려졌던 따뜻한 다수의 가치를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김민섭이 쏘아올렸던 작은 공을 보며 달콤창고의 따뜻한 추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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