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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Nov 15. 2021

현대차 주주지만 현대차가 덜 팔렸으면 좋겠다

생애 두 번째  큰 지출 앞에서 마음 상한 기록

장농면허 10년차. 차가 없어도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 것 같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연세가 더 드셔서 병원에라도 모시고 가려면, 아니 그 전에 어디 경치 좋은 외곽에서 근사한 식사라도 대접하려면, 내가 운전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 그래서 차를 사기로 결심했다. 거기다 서울이야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고 워낙 교통체증도 심해서 차를 살 생각도 안했지만 지방살이에 차가 없으니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차를 구입하는 것은 내게 생애 두 번째로 큰 지출이다. 지출금액이 크기도 하고 차는 한 번 사면 마음에 안들어도 다시 사기 어려우니 정보를 수집하고 신중하게 선택을 했다. 특히, 여자가 차를 사러가면 무시하고 호구되기 십상이라 해서 각 제조사들 홈페이지와 자동차 관련 블로그, 유튜브 등을 찾아서 각 차종 특징과 장단점들을 열심히 공부했다. 지나가는 차의 옆모습만 봐도 차종, 연비, 치명적인 단점이 술술 나올 만한 경지가 되어서 나는 자신있게 대리점을 방문했다.


원하는 차종 가격표를 뽑아서 꼭 필요한 옵션을 형광펜으로 표시해서 대리점 영업사원에게 내밀었다. 나는 이 것, 이 것, 이 것 포함된 이 차량을 원하니까 보여달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나는 아주 구체적으로 내가 필요한 것을 요구하였는데 계약은 하나도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옵션을 분명히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요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영업사원은 다른 옵션들이 추가된 상위등급에 또 선택옵션을 추가한다. 색상도 내가 선택한 색상이 아니라 금액이 추가되는 시그니쳐 색상에 표시한다.

'이게 뭐지?  차를 사서 탈 사람은 나인데 왜 자기 마음대로 하지?'

다시 내 의견을 말하려고 하면 차를 잘 모르셔서 그러는거라 한다. 차를 파는 사람보다 모를 수는 있지만 내가 탈 차고 내가 이만큼 찾아보고 선택한거잖아요.

그렇게 구매자가 아니라 판매자가 원하는 차가 customize 되었고 그 차 견적서 하나 받아들고 십만원 입금하였다. 출고될때까지 언제든 해약금 없이 취소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그런데 계약을 한 적 없으니 해약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뭐 하나 정확하게 정한 게 없는데 계약은 무슨 계약. 계약 대상과 인도방법 아무 것도 고지받은 게 없는데.


4주가 흐른 어느 날. 영업사원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주에 차가 나오니까 카드번호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한다. 뭔가 이상한데. 이 이상한 기분은 뭐지.

그렇다. 3000만원을 선지급하라고? 계약서 한 장 없이?

계약서도 없이 카드번호를 불러 달라 하시냐니까 계약서는 나중에 써도 괜찮으니까 우선 할 일은 카드번호랑 보험가입이란다. 아니, 누구 입장에서 괜찮다는 겁니까?

정 찝찝하면 견적서라도 보내주신다는데 견적서가 계약서입니까? 계약서는 처분문서입니다, 견적서는 아니고.

계약서도 없이, 언제 어떻게 물건 수령한다는 것도 모른체 3000만원부터 내라니요....영업사원은 말한다. 차를 잘 모르셔서 그러는거라고. 뉴스 봐서 알겠지만 요즘 차를 주문하고도 몇달 기다려야 되는데 계약서가 문제냐고.

그럼 차는 어디로 탁송해주시는거냐, 난 탁송장소 선택한 적도 없는데. 차는 카 인테리어에 둘테니 시간될때 찾아가란다. 운전 잘 못하면 본인이 집까지 가져다주는 정도는 해줄수 있다고, 선심쓰듯 말한다.

"카 인테리어요? 그럼 카 인테리어에서 인수 싸인한다는 말씀이세요? 그러면 검수도 카 인테리어에서 하는 거에요?"

검수라면 뭘 말하는 거냐고 오히려 되묻는다. 검수는 공장에서 다 하고 나오기야 하겠지만 검수할거냐고 주인한테 묻지도 않고 인수 싸인이 되어 있을 예정이라니. 그것보다 카 인테리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썬팅과 블랙박스 설치하려고 카 인테리어에 맡긴다는데 썬팅할건지, 하면 어떻게 할건지, 블랙박스는 무슨 제품 설치할건지 나한테 물어본적도 없고 알려준 적도 없다.

내가 물어도 대답을 안한다. 뭔가를 물으면 차를 잘 몰라서, 운전은 잘 하시냐고 말을 돌린다. 호칭도 끝까지 ㅇㅇㅇ씨. 저기요, 호칭은 원래 고객님 아닌가요.


고급차들에 비하면 3000만원은 작은 돈일지 몰라도 나는 지금 생애 두번째로 큰 지출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연봉과 맞먹는 돈을 한번에 지출하는데 영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 차를 구입한 친구들에게 물으니 원래 그렇다고 한다. 현대차는 원래 그렇게 사는 거라고. 엄청 기분 나빴지만 핸들 잡을 때는 기분 좋아졌으니 걱정 말라고.

그래? 원래 그렇다고?


원래 그렇다면 굳이 맞설 생각이 없었다. 딜러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딜러도 마찬가지라면, 그게 관행이라는데 어쩌겠어. 요즘은 차 사려는 사람이 을, 현대차가 갑이라는데.

남자사람 직장동료에게 물었더니 3000만원을 쓰면서 그런 대접을 받고 있냐며 딜러 번호 넘기란다.

"그러지마, 원래 그렇다잖아."

"야, 원래가 어딨어? 도요타나 BMW 매장 가봐, 대우가 다르다. 요즘 가격 차이 얼마나 난다고. "


남자사람직장동료가 딜러와 통화하더니 이 딜러 웃기는 놈이랜다. 묻는 말에 대답 안하고 요리조리 쏙쏙 말 돌린다고. 하지만 나에게 하던것과 달리 몹시 정중하다고.

"기분 나쁘면 사지마, 적은 돈도 아닌데 왜 돈 쓰고 기분 나빠?"

왜 기분 나빠도 참았냐면 이제 국산차는 현대기아차 밖에 없으니까. 현대기아차가 그렇게 한다는데 불만제기한들 뭐해.

"그러니까 왜 국산차를 고집하냐고?"


그렇다. 차 사며 기분 나쁘면서까지 굳이 국산차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으로 테슬라를 사 버리면 이런 고민따윈 할 필요도 없는데.

테슬라 주식은 한 주도 없지만 나는 현대차보다 테슬라가 더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현대차 주주지만 현대차가 덜 팔렸으면 좋겠다. 조금은 고객친화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편의점에서 천원짜리 컵라면 하나 사면서도 과잉친절을  강요하는 나라에서 수천만원 자동차는 이렇게 겸손하게 사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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