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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Nov 22. 2021

내가 주식을 하는 이유

뒷담화보다는 나은 것 같아서

 2021.11.22. 한동안 파란불이던 내 주식 잔고가 아주 오랜만에 빨간불이 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빨간불은 몹시 낯설고 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다지 가세에 도움도 안되고 인생 대박날 만큼 큰 돈 굴리는 것도 아닌데 빨간불 들어왔을 때 털고 나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니. 이대로 두기로 했다.

 주식 전문가가 말하시길 주식을 팔아야 할 때는 오직 그 회사가 더 이상 성장할 전망이 없을 때라고 하였고, 나 스스로도 빨간불에 손절하고 나가서 다시 돌아오기를 몇 차례라 주식이 오르건 내리건 그냥 묻어두기로 하였다.


 주식을 안 하는 사람들에게 주식하는 사람들은 도박판에서 불로소득이나 벌어들이는 불한당으로 보일테지만 해 본 사람들은 안다. 자신의 의사판단으로 인한 리스크를 온전히 안아 내는 것은 노동만큼 힘든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의 노동으로는 내 한 몸과 내 가족을 먹여살릴 뿐이지만 주식 한 주를 사는 것은 내가 투자한 그 회사와 증권회사와 유관기관들, 수 많은 사람들의 생계에 파급된다는 것을 말이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던 '승수효과'라는 개념이 이렇게 이해가 되었다.


<승수효과 > 외생변수(exogenous variable)가 한 단위 변화할 때, 그 영향을 받는 내생변수(endogenous variable)가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비율로 표시한 것을 ‘승수(multiplier)’라고 정의하며, 통상적으로는 승수 값이 1보다 클 경우 승수 효과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 출 처 : [네이버 지식백과] 승수 효과 [Multiplier effect]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 경제편, 이한영)

 

 아무튼 손절하고 나가기를 반복하던 내가 끝내 주식시장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빨간불의 유혹이 달콤해서가 아니다. 적당한 인간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이다.


 2021년 3월 기준 우리나라 주식투자인구는 835만명으로 추정된다. 특히 2030세대 직장인은 약 80%가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업종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직장인 4-5명이 모이면 그 중에 2-3명은 주식을 하고 있거나 적어도 관심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 주식은 마치 일일연속극과 같다. 주식은 직장생활의 실패없는 small talk이다. 일일연속극이 꼭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람들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처럼 주식도 그렇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마음 상하지 않는 대화주제를 찾기 위해서.

  더군다나 나의 수익률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보니 주식 이야기로 마음 상할 일이 없다. 수익률이 좋은 사람은 미움을 받을지 모르나 나처럼 얕게 파란불을 유지하는 사람에겐 오히려 동지애, 동료애를 보내는 법.


 그렇게 오늘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는 식사 자리에서 주식 이야기로 물꼬를 텄다. 허풍 좀 보태자면 거의 전국민이 다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오늘 삼성전자가 오르네요."

 오늘 같은 날, 이런 말을 걸면 10에 5-6명은 기분이 좋다. 그래도 회복하려면 멀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어쨌든 마이너스는 줄었고 적어도 휴지조각은 되지 않을 삼성전자니까.

 직장인들이 모여서 하는 말들이라곤, 업무에 관한 이야기 아니면 같은 회사 동료 뒷담화. 둘 다 비호감 주제에 이제 동료 뒷담화는 범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치나 종교 이야기는 할 수 없다. 인류의 오랜 지혜로 우리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려면 종교 이야기와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깨닳았기 때문이다. 취미나 자기계발, 인생철학이나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는 그닥 하고 싶지 않고, 한다한들 이해도 공감도 불가능한 사이가 바로 직장동료들이다. 그러니 주식은 이 얼마나 유용한 소재인가. 수익률이 좋아서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된다한들 돈이 남으니 좋고, 수익률이 좋지 않으면 돈 대신 연대가 남는다.

 나는 그래서 가세에 도움은 커녕 애물단지인 주식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오늘 아주 좋은 탈출 타이밍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유로 나는 스스로 남는 것을 선택했다.


 epilogue. 얼마 전 근황을 묻는 친구와의 대화가 영 걷돌길래, 그리고 그닥 건드리지 말았으면 싶은 화제로 넘어가길래 은근슬쩍 나의 처참한 주식 성적표로 화제를 돌렸다.
"주식 살 돈으로 샤넬을 샀으면 말이지, 확정적으로 돈을 벌었을텐데.....삼성전자로 수익 내서 샤넬 사려할 게 아니라 그냥 샤넬을 샀어야 했지 뭐야...."
자조를 통해 유쾌함을 벌어보려 하였는데 친구에겐 이런 말이 돌아왔다.
"샤넬을 왜 사? 너 명품 좋아하냐?"
그 말이 아니잖아요....

 주식이 아무리 만능 물꼬라할지라도 물길이 불가능한 곳까지 흐르게 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이런 경우엔 최대한 대화의 장을 피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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