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이 무례로 돌아오는 날들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없지 않지만
사회생활이 녹녹치 않을 때 마다 옛친구의 연락이 반가워진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맘 알아주는 사람이 그리워서이다. 친구가 아닌 이들에겐 오히려 무언가를 설명하고 납득시키는데 훨씬 노력과 시간을 많이 쓰는데도 그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 힘이 빠지는 나날. 그들이 특히 이해력이 부족하거나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첫 째 내말을 그리 귀담아 듣지 않고, 둘 째 나와는 경험도 배경도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입을 다물게 되는 나날. 그래서 더욱 친구가 그립고 반가운 나날.
하지만 슬프게도 옛친구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의 걸어온 길들이 우리를 너무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경우도 있었다. 경제관념도 삶의 가치관도 너무 멀어져 버린 한 친구는 자꾸만 나를 찌른다.
"근데 넌 계속 거기 다닐꺼야?"
한참 다른 말을 하다가도 그녀는 매 번 이 말을 한다. 무슨 뜻일까? 다니려고 이직했지, 내가 무슨 불법 다단계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매번 그런 말을 할까?
그러면서 본인이 지난 달 매출을 얼마 찍었다는 말을 한다. 처음 들을 땐 오랫동안 고생했던 친구에게 이제 좋은 날이 왔나 싶어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저 매출 얼마 찍었다며 넌 계속 거기 다닐거냐는 말에 나는 그녀의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공공기관 월급쟁이 월급이 큰 돈은 아니더라도 나 쓰는데 부족함 없고 내 일에 보람도 자부심도 있다. 돈 많이 주는 회사도 다닐 만큼 다녀봤다. 거기다 아직 2년밖에 안다닌 회사를 벌써 때려치면 내 경력만 애매해질 뿐이다.
그런데 거기 계속 다닐거냐니.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일까?
언젠가 그녀는 본인이 기획할 행사에 "인권변호사"로 2시간 강연을 해주면 보수를 섭섭치 않게 쳐주겠다는 말을 한다. 유명 정치인 누구도 섭외할 예정이라는 말을 하며.
'내가 인권변호사인가?'
나는 인권변호사가 아니다. 공공기관 소속이라 아무 행사나 참석할 수도 없다. 정치인이 참여하는 행사라면 더더욱.
내가 갈 자리는 아닌 것 같다고 정중하게 거절했더니 그녀는 말한다.
"왜? 난 인권변호사 ㅇㅇㅇ랑 같은 급으로 너 섭외하는건데."
급이란 말에 묘하게 마음 상하면서 그녀의 모든 날 모든 말들이 퍼즐처럼 맴돈다. 어쨌든 친구니까. 라고 덮었던 날 위에 어제 또 한 마디가 쌓였다.
"근데 넌 거기 계속 다니는거야?"
나도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게 아니다. 이해 안되는 게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조심하는 것이다. 친구니까. 행여 나도 의도치 않게 그녀의 마음을 찌를까봐.
그녀의 삶을 이해하지 못해도 존중하려 노력하는데 그녀에게선 자꾸만 무례가 돌아온다. 어쩌면 다음 연락은 그리 반갑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말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녀는 모르는 걸까 아니면 상관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