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의미없는 리스트
제 여권에 남아 있는 마지막 도장은 2019년 9월 후쿠오카. 그리고 2019년 말에 시작된 코로나는 2020년, 2021년, 그리고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조심해야 하지만 슬슬 해외여행 제한은 풀리고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발이 묶인 2020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3년의 시간을, 어디 코로나만 끝나봐라 칼을 갈며 희망여행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쿠바
국제선 비행기를 못 탄 것이 한이 되어서 징하게 비행시간 긴 곳을 찾은 것이 쿠바. 물론 더 오래 걸리는 곳도 있지만 일단 20시간이 넘으니 합격. 그동안 국제선을 못 탄 한을 한 번 풀어 봅시다.
직항도 없고 비행시간이 20시간 넘는 것은 단점 중에 단점인데 그래서 합격이라니 이 사람 좀 이상하다 하시겠죠. 경유에 대기에 총 비행시간이 짧아야 20시간이면 험한 말부터 나오는 게 당연한데 그런데를 찾아서 간다니 말입니다. 그 만큼 국제선이 고팠습니다. 내가 코로나만 끝나 봐라, 최대한 멀리멀리 갈테다!라고 벼르며 쿠바를 떠올렸습니다.
2. 그리스
유적지와 휴양지의 완벽한 콜라보가 세상에 존재하니, 바로 그리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는 신혼여행지로 아껴두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이번 생에 결혼은 그른 듯 한데,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결혼 때문에 아껴두고 미루다가 하마터면 영원히 못 갈 뻔 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유적지인 아테네와 휴양지의 끝판왕인 산토리니 등 종합선물세트 같은 그리스는 신혼여행으로 다시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가 봐야겠습니다.
3. 마카오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곳이라 포르투갈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양 속 유럽이라 불리기도 합니다(포르투갈은 유럽 속 중국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겠습니다). 2019년 3월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포르투를 여행하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겨울쯤엔 마카오로 여행을 가야지, 마카오에서 포르투갈의 자취를 찾아봐야지 라고요. 그런데 그 해 말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가야지 하고는 못 간 곳. 그래서 일단 가 보렵니다.
4. 이탈리아
2019년 3월 포르투갈 여행에서 돌아오며 다음 여행지로 생각한 곳은 또 한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탈리아입니다. 이탈리아는 로마, 피렌체, 베니스를 이미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미 여행한 적이 있는 이탈리아를 우선순위 여행지로 선택한 것은 포르투갈 여행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젊은 날 이탈리아 일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포르투갈은 어떤 유명한 장소를 찾아가는 것보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골목들을 걷는 게 좋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리스본과 포르투는 언덕에 돌바닥이 대부분이라 걷다 보면 너무 힘이 듭니다. 몇 걸음 못가고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며 쉬다, 또 몇 걸음 못가고 바에 들려 와인 한 잔하고, 그렇게 언덕 하나 오르는데 몇 시간이 걸리고 저녁엔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슬프지만 체력이 예전같지 않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나이를 먹으며 직장인 생활도 계속할테니 체력은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좋아질 리는 없겠죠. 그러면 버킷리스트 중에 체력소모가 가장 많은 여행부터 일단 다녀 오자, 많이 걷고 힘든 여행. 하지만 꼭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여행. 바로 저에게 그런 여행이 이탈리아 일주입니다. 영원한 내 마음 속 원픽 로마에서 시작하여 인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토스카냐를 거쳐 남부의 나폴리와 시칠리아섬까지, 일단 다녀 와야겠습니다.
이렇게 TOP 4를 뽑아 보았습니다. 4개만 뽑느라 무지하게 힘들었지만 사실은 의미 없는 리스트입니다. 어디 여기뿐일까요.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고 아직 못 가본데도 많지만 가본 곳도 또 가면 좋은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