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퇴사일기
- 저는 비매너퇴사자입니다 #1편
1년 3개월 전 나는 퇴사를 하고 정확히 1주일 뒤 지금의 회사에 첫출근을 하였다.
퇴사를 하기까지 나는 전회사에 5년 6개월간 근무하였다.
전회사에 퇴사를 통보하던 당일 오후 두시 나는 이직할 회사의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오후 세시가 되기 전 팀장님께 퇴사를 통보하였다.
- 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팀장님의 첫마디는, 우리회사는 상당히 좋은 회사인데 이 회사를 그만두다니 얼마나 좋은데를 가냐고 하셨다. 이런 회사를 그만둘 정도라니 진짜 좋은데인가 본데, 우리나라에서 이 보다 좋은 회사라니 어디가 있을까라고.
그래, 내가 그만둔 그 회사는 객관적으로 아주 좋은 회사이다. 근로조건만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그보다 좋은 회사 없다는 말이 맞을지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말은 업무 공백 없도록 인수인계 잘 하라는 말이었다.
인수인계라니? 우리 회사가 인수인계라는 걸 하는 회사였나? 나는 입사 후 단 한번도 인수인계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는데.
처음 이직도 아닌데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쩌면 커밍아웃이 이직에서 가장 어렵고 큰 부분일지 모른다.
큰일은 했으니 이제 작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이직할 회사의 출근날짜가 정해졌기 때문에 나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 처리할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특히 회사 사택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집도 구해야 했다.
직속상사에게 말은 했으니 인사팀과 처리할 일들을 처리해야했다.
1. 퇴사날짜를 지정하고, 2. 사직서를 작성하고, 3. 사택을 반납하고, 4. 퇴직금 수령 절차를 의논한 후, 5. 사원증 반납절차도 알아보고, 6. 사무실 자리도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업무관련
1. 진행하고 있던 업무는 전부 결재를 올리고, 2. 외부에 보내야 할 메일도 전부 보내놓고, 3. 그동안 나에게 분장되었던 업무 진행사항과 앞으로 처리해야 될 일들을 정리해서 매뉴얼로 만들어 팀원 전체에게 보냈다.
3.은 이직준비를 시작하면서 만들기 시작했다. 나름 자세히 정리한다고 했는데, 후임자 입장에선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 터지기도 하겠지. 하지만 나도 꼰대라. 후임자야, 나도 그렇게 컸단다. 이런거 만들어 주는 사람도 없었고, 어느 날 갑자기 오늘부터 여기 앉는거다가 업무분장&인수인계의 전부였단다.
그리고 전임자가 존재하는 이상 영원히 인수인계란 없다. 내가 한달 뒤에 퇴사하겠다고 하든, 두달 뒤에 퇴사하겠다고 하든, 절대 후임자를 데려다주며 얘한테 인수인계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퇴사하는 날까지 내가 하던 업무 처리한다고 바빴겠지.
해야 할 일을 다 처리한 후 나는 바로 다음날부터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비매너로 퇴사를 하였다.
퇴사한다 말하고 내일부터 회사안가야지란 것을 의도하였던 것은 아니다.
합격자 발표와 첫출근일 사이에 주어진 시간이 1주일밖에 안되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잘 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다녔던 회사가 미워서이거나, 이제 가는 마당에 다시는 안보려고, 말하자면 속된 말로 엿먹어보라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퇴사한 회사는 아주 좋은 회사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나의 전직장 동료 중 많은 사람들과 연락을 하고 인연을 이어 나가고 있다.
솔직히 저 정도 했으면 내가 없다고 저 큰 회사가 안돌아가거나 큰 일 나지 않는다.
나는 700명(아마 지금은 그보다 규모가 커졌을 것이다)이 넘는 사원 중 아주 미미한 한명일 뿐이잖아.
수십년 업무노하우가 쌓인 회사가 어느 날 잔챙이 직원 하나 사라졌다고 큰일 나지는 않는다. 어차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회사다.
다시 퇴사 통보 당일, 퇴직금을 수령하려면 IRP계좌를 만들어 와야 한다고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미뤄둘 이유도 없고 여유도 없었다. 바로 사무실 건물 1층에 있는 은행 가서 당장에 만들어왔다.
IRP 계좌 만들어 달라고 하니, 은행 담당는 한소리 한다.
- 여기 좋은 회사 아니에요? 다들 가고 싶어하는 회사잖아요. 왜 퇴사하세요?
여기 이 건물 은행들 하나같이 왜이러냐. 여기 2층에 있는 은행은 예금 가입해 달라하니,처음 보는 담당자가 결혼은 안하졌죠라고 하질 않나.
- 더 좋은데 가시나 보내요. 서울 가세요?
참 힘든 날이었다. 멘탈 털리며 만든 IRP 계좌를 만들어 급여팀 당당자에게 사본 전달하고 돌아서는데,
- 엄청 빠르네. 뭐가 저렇게 급해.
이 정도 되면 내가 전회사에서 적응을 못하거나 왕따를 당해 퇴사한 줄 알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전회사에서 앞길이 탄탄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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