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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Nov 05. 2020

나의 퇴사일기

저는 비매너퇴사자입니다 #2편

-------------------------(1편에서 이어서)-------------------------------------------------------------------------------


대충 퇴사자가 처리해야할 절차들을 마무리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최초 커밍아웃하고 세시간이나 되었을까, 벌써 소문이 났는지 부재중 전화와 메신져가 몇통이나 와 있었다.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하다는 말로 답장을 시작하고 있는데 누군가 쓱 다가왔다.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나보다 서너살 많은 여자 직원이었다.

- 어디로 가요?


아직 퇴사를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주목!

퇴사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이 사람이 나와 어느 정도 관계인 사람인지 견적이 나온다.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들일수록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 한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무슨 상관인 사람들일수록 어디로 가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그래서 알려주기 싫었다. 알아도 될 사람들은 묻지 않는다. 너는 알 필요가 없는데도 물으니 알려주기 싫다.


- 언제까지 나와요?


정신 없는 척 어리버리하게 웃으니 팀원이 대신 말해준다.


- 오늘이 마지막이래, 주말에 정리하러 한번더 오려나봐. 인사할 시간도 없이 아쉬워서 어떻게 해


그러자 평소에 인사나 하는 정도이던 그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 어머, 우리회사는 써티데이 노티스도 없나봐


너는 지각이나 안하고 그런 말을 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

- 비밀이래, 한달 뒤에 알려준대

- 어머, 왜? 얼마나 좋은데 가길래 비밀인데? 나 궁금해서 한달이나 못기다릴 것 같은데


도대체 니가 왜 궁금하다는 거니?

내가 인사드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 부장님, 사무실에 계세요? 잠깐 찾아 뵈어도 될까요?

- 나 오늘 휴가.


회사에서 나 한번 살려준 적 있는, 내가 좋아하는 선배시다. 웬만하면 직접 찾아가서 말씀드리고 싶은데 오늘 휴가시라니, 전화를 드려야 하나 고민 중인데 바로 톡이 왔다.


- 왜, 이직하냐?


뜨어~ 이 분 정말 촉이 좋으신건가, 아니면 휴가중에도 발빠른 정보력을 갖추신건가


- 어떻게 아셨어요?

- 나 촉 좋지? 축하한다.


끝. 절대로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으셨다.

새명함 들고 찾아뵈어서, 별에 별 사람들이 다 전화와서 어디가냐고 묻던데 어찌 어디 가냐고 안물으셨냐니까, 한 마디 하신다.


- 니가 말하겠지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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