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주부, 육아, 그리고 삶에 대해서
만혼이었다.
인생을 살 만큼 살았고, 사람들을 만날 만큼 만났으며, 놀 거 다 놀고, 여행도 실컷 다니고, 취미 생활도 마음껏 즐기고 결혼했다.
내 성격은 안정적이었으며, 쉽게 분노하거나 쉽게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고, 말이 많은 편도 아니었고 적당히 사람들을 대할 줄 아는, 난 꽤 잘 익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쉽지 않은 결혼의 과정, 그리고 남편과의 오랜 연예, 안정적인 직업과 기술, 아이를 낳고자 하는 열망, 등 난 결혼, 결혼 후의 삶, 아이를 출산하고 낳는 육아의 과정 모든 것을 감내할 만큼의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계획과 예상은 늘 맞지 않는 법이다.
자연주의 출산을 계획했던 나는 출산부터 꼬였다. 아이를 자연스럽게 출산하는 데 실패한 나는 육아의 출발부터 어려웠다. 모유수유도 실패했다. 모유수유는 제2의 출산이라고 했던가. 우리 아이들은 내 가슴을 좋아하지 않았고 결국, 난 젖소의 젖에 내 아이들의 음식을 의지해서 키워냈다.
살면서 거의 자존감이 바닥을 친 적이 없던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자존감이 지하 밑바닥으로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우왕좌왕하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 많았다. 젊은 시절 루틴을 혐오하고 해내지 못했던 나는 아이와의 루틴을 지키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아이와의 소통은 성공확률이 반도 안 됐다. 아이가 말을 하면 소통이 원활할 줄 알았는데, 아이가 따박 따박 말을 하게 되자, 내 분노게이지도 같이 발달하여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게 됐다.
둘째 아이를 출산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원래 미숙하고 어리숙했던 엄마로서의 나는 아이 둘과 함께 진흙바닥에서 뒹굴었다. 차마 때리지 못해서 나는 말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이들을 향한 온갖 비난과 조롱, 협박을 입에 달고 살았고 그런 미숙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아침마다 전쟁에, 잠들 때도 전쟁,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싸우는 두 자매 덕분에 난 원하지도 않는 전쟁의 한복판에 놓이기 일쑤였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참호에 숨었다가, 밖으로 도망갔다가,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육아 교육 유튜브나 '금쪽같은 내 새끼'보면서 밤을 지새우고, 하도 속이 답답해서 맥주를 물처럼 벌컥벌컥 마신 적도 있었다. 어쩔 때는 지쳐서 10시도 안 돼서 혼자 잠들었고 아이들 걱정에 내 걱정에 남편의 건강 걱정에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하염없이 기도한 적도 있었다.
나는 30대까지는 잘 익은 열매같이 빛난다고 생각했는데, 40대가 되니, 갑자기 시든 열매가 돼서 언제 땅에 떨어질지 모를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그러면서 결국,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를 잘하지도 못하고, 육아를 잘하지도 못하는구나."
어쩌면 난 평생을 '잘해야 한다,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속에서 아이를 키워내는 한국의 엄마들은 모두 '잘하는 엄마'로써 자기를 다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엄마들은 잘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은 할 수 있으나 실제로 잘 못하면 상처를 크게 입는다. 잘 회복도 안 되고 자존감은 물론 자신감도 바닥을 치게 된다. 매일매일이 육아인데, 매일매일이 루저가 된다면, 회복할 시간을 언제 확보할 수 있을까.
매일의 삶을 잘 해내지 못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하루하루를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도 쉽지 않은 세상인데, 안 좋은 기억과 바닥난 능력을 확인하며 사는 것은 마음을 매우 어렵게 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엄마를, 주부를 그리고 육아를 해보고 싶다.
요즘에 나는 '잘하는 엄마'와 안녕하기를 하는 중이다. 난 '우왕좌왕하는 엄마'다. '바닥을 드러내고 날 것 그대로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엄마'다. 하지만 난 다짐한다. '안 좋은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비록 남편과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만, '부끄럽게 삶을 만들어 가면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그렇게 남들 기준이 아닌, 무조건 잘하는 엄마가 아닌, 나는 내가 해낼 수 있고, 할 수 있는 나만의 엄마를 찾으면서 만들어 가는 중이다. 그러니, 엄마들이여, 고군분투하며 치열하게 삶의 현장을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서로 어설픈 훈수는 두지 말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응원해 주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말들을 주고받자. 잘하고 있다고 이것이 최선임을 안다고 말해주자. 최소한 21세기를 한국에서 살아가는 엄마들은 그렇게 서로 기대면서 살아내야 이 시기를 견디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