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기다리는 설렘과 긴장감
첫 손님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북카페를 열던 날, 가게 문을 열고 카운터에 앉아 기다렸던 시간은 아직도 또렷한데, 정작 그 문을 가장 먼저 열고 들어온 사람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날 나는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을테니까.
괜히 깨끗한 테이블도 몇 번 더 닦고, 커피 머신의 위치를 몇 번이고 조정하면서 컵도 한 번 더 닦고,
혹여나 손님이 왔을 때 머뭇거리지는 않을까 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봤겠지.
그리고… 문이 열렸을 것이다.
처음으로 북카페에 들어온 손님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목소리로 주문을 했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하루에 두 번씩 라떼를 주문하던 손님.
점심 무렵 한 번, 저녁이 되기 전 한 번.
"사장님, 라떼 한 잔이요."
"오늘도 라떼 드세요?"
"네, 여기 라떼가 맛있어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뭉클했다.
북카페를 차리기 전에 카페 메뉴 선정도, 원두 선택도, 우유도,
모든 걸 고민하면서 '이렇게 하면 될까?' 수없이 망설였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 모든 선택들이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손님의 말 한마디로 옳았구나 싶었다.
그 손님은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방문해서 라떼를 포장해갔다.
때로는 핸드폰을 보며 잠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가볍게 책을 집어 들어 책장을 넘겨보기도 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일상의 일부가 되었구나."
사실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매장에서 나갈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아침에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커피를 만들고,
책을 정리하고,
택배를 보내고,
그리고 다시 청소하고…
아무리 좋은 공간을 만들었어도 어느 순간 내가 그 공간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보고 싶던 책들은 책장에 꽂혀 있지만 읽을 시간이 없었다.
나에게는 늘 손님이 먼저였고, 책보다 커피 머신을 만지는 시간이 더 길었다.
매장을 운영하면서, 나는 손님들에게 커피와 책을 권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정작 내가 책을 읽는 시간은 점점 사라졌다.
그런데, 그 속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사장님, 주말에는 뭐하세요?"
"오늘은 오후 출근이세요?"
"블로그에 북카페 후기 남겼는데, 보셨어요?"
손님들과의 대화가 하나둘 늘어났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나는 그저 커피를 만들고 책을 소개하는 역할일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손님들과 안부를 묻고,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고,
출근길에 지나가며 마주치는 얼굴들을 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손님들과 짧은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손님들이 나에게 다가와 준 덕분에,
나는 북카페라는 공간이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서로에게 ‘머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북카페라는 작은 공간에서, 매일 일부러 방문해 주고,
기꺼이 돈을 지불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내게 따뜻한 말을 건네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 덕분에 북카페를 운영하는 일이 외롭지 않았다.
하루 종일 매장에 갇혀 있어도, 손님들과 주고받는 작은 대화들이,
내 하루를 조금씩 다채롭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그 손님들 덕분에
아직도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카페를 연다면,
또 누군가가 내 공간을 찾아와
"여기 커피가 맛있어서요."
라고 말해줄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