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보내온 오래된 신호

by 윤슬

밤공기가 얇게 갈라지던 시각,

동네 사람들 사이로 한 문장이 흘렀다.


“멧돼지가 내려왔대.”


그 말이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돌아다녔다.


나는 그 소식을 들으며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은

언제나 동물들만이 아니었으니까.


우리가 깔아놓은 아스팔트 위에

그들이 조심스레 발을 디딘 건

용기라기보다, 선택지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돌아갈 산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을 테니까.


며칠 전까지도

삽날이 반짝이던 공사장 앞을 지나며

나는 이상하게 그 쇳빛이

나무껍질보다 더 낯설게 느껴졌다.


뿌리가 뽑힌 자리에는

흙냄새 대신 먼지가 떠다니고,

새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산의 테두리가 깎일 때마다

가장 먼저 떠밀려 나는 건

이름조차 모르는 생명들이었다.


그들은 길을 만들 줄 모르고

경계선을 넘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우리가 남겨둔 틈으로

어쩔 수 없이 내려왔다.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멧돼지는

위협이라기보다

숲이 보내는 오래된 신호처럼 보였다.


“여기, 우리의 집이 사라지고 있어.”


그 말이 들리지 않아

우리는 바쁜 일상에 묻어두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발자국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이 세상의 속도가 조금만 느렸다면,

나무 한 그루를 베기 전에

잠시만 더 귀 기울였다면,

누군가의 집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온전히 숨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인간의 개발은 종종

빛나는 미래의 이름을 달고 오지만,

그 그림자 아래엔

작은 생명들의 이주 기록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다.


오늘도 도시의 불빛은 밝지만

그 불빛에 밀려난 어둠 속에는

발자국 몇 개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우리가 잃어버린 숲의 조각이라고 불러보고 싶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질문 하나를

가만히 마음에 올려두었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잃어야,

비로소 들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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