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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보내온 오래된 신호
by
윤슬
Dec 7. 2025
밤공기가 얇게 갈라지던 시각,
동네 사람들 사이로 한 문장이 흘렀다.
“멧돼지가 내려왔대.”
그 말이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돌아다녔다.
나는 그 소식을 들으며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은
언제나 동물들만이 아니었으니까.
우리가 깔아놓은 아스팔트 위에
그들이 조심스레 발을 디딘 건
용기라기보다, 선택지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돌아갈 산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을 테니까.
며칠 전까지도
삽날이 반짝이던 공사장 앞을 지나며
나는 이상하게 그 쇳빛이
나무껍질보다 더 낯설게 느껴졌다.
뿌리가 뽑힌 자리에는
흙냄새 대신 먼지가 떠다니고,
새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산의 테두리가 깎일 때마다
가장 먼저 떠밀려 나는 건
이름조차 모르는 생명들이었다.
그들은 길을 만들 줄 모르고
경계선을 넘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우리가 남겨둔 틈으로
어쩔 수 없이 내려왔다.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멧돼지는
위협이라기보다
숲이 보내는 오래된 신호처럼 보였다.
“여기, 우리의 집이 사라지고 있어.”
그 말이 들리지 않아
우리는 바쁜 일상에 묻어두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발자국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이 세상의 속도가 조금만 느렸다면,
나무 한 그루를 베기 전에
잠시만 더 귀 기울였다면,
누군가의 집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온전히 숨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인간의 개발은 종종
빛나는 미래의 이름을 달고 오지만,
그 그림자 아래엔
작은 생명들의 이주 기록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다.
오늘도 도시의 불빛은 밝지만
그 불빛에 밀려난 어둠 속에는
발자국 몇 개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우리가 잃어버린 숲의 조각이라고 불러보고 싶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된 질문 하나를
가만히 마음에 올려두었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잃어야,
비로소 들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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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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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 글로 마음을 어루만지며 외로움과 상처에 위로를 전하는 작가 .생태와 일상 , 작은 생명에 관심을 주는 시인, 에세이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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