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끝에서 다시 만난 세계
『희랍어 시간』 속의 문장들은 날 선 얼음 조각처럼 서늘했고, 때로는 탑의 조형을 닮은 글자처럼 단단히 세워져 있었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보르헤스의 묘비명으로 시작하는 책의 첫머리는, 이 소설이 결국 ‘간극’에 관한 이야기임을 조용히 예고한다. 말과 말 사이, 침묵과 상실 사이, 한 사람과 또 한 사람 사이의 도저히 메워지지 않는 틈.
여자는 그 틈에서 오랫동안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꼬챙이 같은 말들이 잠을 찢고 들어오던 밤들을 지나, 혀끝에서 하얗게 뽑혀 나오는 문장들을 부끄러워하던 사람. 남자는 빛을 잃어가며 세계의 윤곽이 사라지는 것을 매일 목격하는 사람이다. 새벽의 가구들이 푸른 헝겊에 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 황홀한 환각이 사실은 약한 시력 때문이었다는 그의 고백처럼, 이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죽은 언어인 희랍어 앞에서 처음으로 조심스레 서로에게 닿는다. 여자는 “ㅅ-ㅜ-ㅍ”이라고 내뱉을 때 공기가 천천히 새어 나가는 그 감각을 사랑했던 사람이고, 남자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긴 사이를 두어 글을 쓰는 사람이다. 둘의 대화는 잉크 위에 잉크가 덧발라지듯, 기억 위에 기억이 겹쳐지듯 아주 미세하게 깊어진다.
읽는 동안 가장 마음이 기우는 것은, 소설이 보여주는 ‘중간태’의 세계였다.
아직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지나간 것도 아닌 상태.
어둠 뒤로 주춤 물러선 여름밤처럼, “그리 오래지 않은 오래 전의 밤”처럼, 잠시만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시간.
그 중간태에서, 여자는 문득 한 장면을 떠올린다.
커다랗고 차가운 수박을 안고 아이와 걷던 밤.
입술에 악물린 자국도 없고, 눈에 핏물이 고여 있지 않던 어느 짧고 단단한 순간.
그 기억은 마치 “사금 한 줌 같은 명제”처럼, 고통을 통과하고 남은 어떤 투명한 결정을 닮아 있었다.
소설의 여러 장면들은 물감처럼 겹쳐 흐른다.
칠월의 햇빛을 받은 강물이 거대한 물고기의 비늘처럼 뒤척이던 오후,
얼음에 담근 듯한 햇빛이 쏟아져내리는 성 슈테판 성당,
어둠 속에서 글을 쓰듯 한 줄 위에 또 한 줄이 덧입혀지는 남자의 독백.
이 이미지들은 한강 작가 특유의 차갑고 투명한 언어 속에서 더욱 선명해지고, 읽는 이로 하여금 말 대신 감각으로 문장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칼레파 타 칼라.”
아름다움은 어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고결한 것이다.
고대 희랍인들에게 하나였던 세 개의 의미처럼, 이 소설 속 아름다움도 고통과 결코 따로 놓이지 않는다.
『희랍어 시간』은 큰 사건 없이 흘러가는 소설이지만, 읽는 동안 서서히 마음에 미세한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마치 너무 오래 꽁꽁 언 강이 아주 미세하게 균열을 내는 시간들처럼.
흔들림 끝에 다시 만날 세계에 우리가 이미 들어서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보란 듯이 마음의 균열을 만든다.
어쩌면 한강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라지는 것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려 했을지도 모른다. 사라지는 빛, 사라지는 말, 사라졌던 마음. 그러나 그 소멸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기이하게 발아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삶의 가장 연약한 순간에 만난 연약한 인간으로부터 서로의 상실을 극복할 힘을 얻는 이야기. 그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202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