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는 퇴사 이후의 제 삶과 생각들을 기록하는 곳입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성취, 실패의 경험들을 진실되게 담아내고자 해요. 현재 저는 자유롭고 평안한 삶 속에서 기초를 견고히 하는데 힘쓰며, 창조적인 일들을 해내고 있고, 앞으로 더 잘 될 것입니다.
바람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더욱 잘 될 운명입니다.'
#인생시계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퇴근하던 날,
예전 부서에서 모셨던 상사가 퇴직 신청자 리스트를 보았다며 내게 전화를 주었다.
아랫사람으로부터 명단 보고를 받은 듯하다.
"강 과장은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인데 아쉽네,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퇴사하면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던데 건강 조심해."
평소 친분이 없던, 오히려 불편하고 어려웠던 분의 뜻밖의 연락에 놀라고 통화내용에 한번 더 놀랐다.
그 전화를 받고 이틀 뒤부터 정말 거짓말처럼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사실은 당일부터 징조는 보였다).
아픔의 시작은 분명 불면증과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들 때문이었으리라.
어렵사리 잠에 들었다가도 새벽 한 두시가 되면 정신이 또렷해졌다.
자려고 노력해도 잠은커녕 생산성 없는 생각들이 꼬리물기처럼 이어져 날 괴롭혔다.
'회사를 그만둔 것이 정말 잘한 것일까?'
'내 선택이 옳은 것일까?'
'회사 다닐 때 그 일을 이렇게 추진했더라면 어땠을까?'
'회사의 지원이 있을 때 그 일도 해볼걸! 저것도 해볼걸!'
'그때 그 직원과 잘 지냈더라면 지금은 어땠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베개만 대면 곯아 떨어지던 사람이 갑자기 이러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심지어 수면유도 영양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고, 불안을 없애준다는 424 호흡도 무용지물이었다.
노력해도 멈추지 않는 잡념들로 머리가 아프고 맥박까지 빨라졌다.
이 불안감은 그 후 며칠 동안 지속되었고, 당연히 몸 컨디션은 나빠졌다.
그 때문인지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퇴사 후 한 달 살이 여행을 다녀오려던 나의 빅픽쳐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부랴부랴 여행 일정을 취소하고, 오롯이 집에서 격리, 아니 요양을 하며 잡생각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집안을 정리했다.
화분들을 가꾸고, 고양이들을 어루만지며 책도 읽었다.
신기한 건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갈수록 내 마음도 한결 안정되어 갔다.
내 몸과 집이 한꺼번에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부정적인 생각들도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격리(격변)의 시간'을 보낸 것이 내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퇴직 후 한 번은 지나쳐야 했던 터널이었달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진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고, 생각과 몸이 씻은 것처럼 상쾌해졌다. 삶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헤르만 헤세가 말했던 '새로운 세계로 날아가기 위한 알을 깨느라' 그리도 아팠나 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Demian_Hermann Hesse
나의 생활이 안정적으로 접어들던 어느 날, 같은 팀 퇴사 동기인 김 부장님에게 톡이 왔다.
'강 과장, 잠은 잘 자나? 난 통 잠이 안 오네...'
부장님도 그 터널을 걷고 있던 게다.
상담전문가인 지인의 말에 의하면, 퇴사 스트레스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고 한다.
짧게는 몇 주에서 심한 사람은 3년까지도 우울감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한 번으로 짧게 끝난 나의 상황은 축복이다.
(김 부장님의 터널은 끝이 났을까. 내일은 안부 연락 한번 드려보아야겠다.)
깨고 나온 나의 생각들은 이러했다.
내 선택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가면 그게 내 삶의 정답인 것이다.
회사에서 못다 이룬 아쉬운 것들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새로운 아이디어이자 기회이다.
내게는 안 좋았던 인연보다 귀하고 감사한 인연들이 훨씬 많다. 그들의 격려를 기억하고 챙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는 이제부터 차근차근 생각하면 될 일이다. 나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고, 충분히 쉴 자격이 있다. 유능한 나무꾼이 도끼의 날을 갈 듯 잘 쉬어야 다시 시작할 힘이 생긴다.
생각을 바꾸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다 못해 새로운 에너지와 기쁨으로 가득 찼다.
놀랍게도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계획을 세우느라 밤잠까지 설쳤다. 아프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생각이란 놈이 이렇게나 무섭다.
좋은 생각들의 연장선에서 김난도 교수가 제시했던 인생시계가 떠올랐다.
그래, 내 나이가 지금 몇 시지?
* 24시간 * 60분 = 하루 1,440분
* 1,440분 / 90세 = 1년당 16분
* 16분 * 내 나이 = 나의 인생 시간
90세를 평균수명으로 가정하고 내 나이를 대입해서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오후 12시 26분 6초.
딱 점심시간이다!
오전 시간 열심히 일한 내게 주어진 보상이자, 오후 시간을 준비하는 시간!
내 인생의 '점심시간'이라 생각하니 안도가 될 뿐만 아니라 환희가 차올랐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던 기쁨이 이런 것이었을까!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와 커피를 나누고, 공원 산책을 가볍게 즐긴 후
업무 시작 10분 전 양치를 하고 단정하게 매무새를 정성스럽게 매만진다.
그다음엔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오후에 할 일들을 쭉 정리하는 것.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나에게 주어진 점심시간을 충분하게 누리는 것이다. 후회 없도록.
#디파짓챌린지 #부지런21일챌린지 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