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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Jun 21. 2022

#2. 내 인생의 '점심시간'

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는 퇴사 이후의 제 삶과 생각들을 기록하는 곳입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성취, 실패의 경험들을 진실되게 담아내고자 해요. 현재 저는 자유롭고 평안한 삶 속에서 기초를 견고히 하는데 힘쓰며, 창조적인 일들을 해내고 있고, 앞으로 더 잘 될 것입니다.

바람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더욱 잘 될 운명입니다.'


#인생시계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퇴근하던 날,

예전 부서에서 모셨던 상사가 퇴직 신청자 리스트를 보았다며 내게 전화를 주었다.

아랫사람으로부터 명단 보고를 받은 듯하다.  


"강 과장은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인데 아쉽네,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퇴사하면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던데 건강 조심."  


평소 친분이 없던, 오히려 불편하고 어려웠던 분의 뜻밖의 연락에 놀라고 통화내용에 한번 더 놀랐다.

그 전화를 받고 이틀 뒤부터 정말 거짓말처럼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사실은 당일부터 징조는 보였다).

아픔의 시작은 분명 불면증과 실타래처럼 얽힌 생각들 때문이었으리라.

어렵사리 잠에 들었다가도 새벽 한 두시가 되면 정신이 또렷해졌다.

자려고 노력해도 잠은커녕 생산성 없는 생각들이 꼬리물기처럼 이어져 날 괴롭혔다.


'회사를 그만둔 것이 정말 잘한 것일까?'

'내 선택이 옳은 것일까?'

'회사 다닐 때 그 일을 이렇게 추진했더라면 어땠을까?'

'회사의 지원이 있을 때 그 일도 해볼걸! 저것도 해볼걸!'

'그때 그 직원과 잘 지냈더라면 지금은 어땠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출처: pixabay


베개만 대면 곯아 떨어지던 사람이 갑자기 이러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심지어 수면유도 영양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고, 불안을 없애준다는 424 호흡도 무용지물이었다.

노력해도 멈추지 않는 잡념들로 머리가 아프고 맥박까지 빨라졌다.

이 불안감은 그 후 며칠 동안 지속되었고, 당연히 몸 컨디션은 나빠졌다.

그 때문인지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퇴사 후 한 달 살이 여행을 다녀오려던 나의 빅픽쳐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부랴부랴 여행 일정을 취소하고, 오롯이 집에서 격리, 아니 요양을 하며 잡생각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집안을 정리했다.

화분들을 가꾸고, 고양이들을 어루만지며 책도 읽었다.

신기한 건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갈수록 내 마음도 한결 안정되어 갔다.

내 몸과 집이 한꺼번에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부정적인 생각들도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출처: pixabay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격리(격변)의 시간'을 보낸 것이 내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퇴직 후 한 번은 지나쳐야 했던 터널이었달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진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고, 생각과 몸이 씻은 것처럼 상쾌해졌다. 삶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헤르만 헤세가 말했던 '새로운 세계로 날아가기 위한 알을 깨느라' 그리도 아팠나 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Demian_Hermann Hesse


나의 생활이 안정적으로 접어들던 어느 날, 같은 팀 퇴사 동기인 김 부장님에게 톡이 왔다.


'강 과장, 잠은 잘 자나? 난 통 잠이 안 오네...'


부장님도 그 터널을 걷고 있던 게다.

상담전문가인 지인의 말에 의하면, 퇴사 스트레스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고 한다.

짧게는 몇 주에서 심한 사람은 3년까지도 우울감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한 번으로 짧게 끝난 나의 상황은 축복이다.  

(김 부장님의 터널은 끝이 났을까. 내일은 안부 연락 한번 드려보아야겠다.)


깨고 나온 나의 생각들은 이러했다.

내 선택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가면 그게 내 삶의 정답인 것이다.

회사에서 못다 이룬 아쉬운 것들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새로운 아이디어이자 기회이다.

내게는 안 좋았던 인연보다 귀하고 감사한 인연들이 훨씬 많다. 그들의 격려를 기억하고 챙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는 이제부터 차근차근 생각하면 될 일이다. 나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고, 충분히 쉴 자격이 있다. 유능한 나무꾼이 도끼의 날을 갈 듯 잘 쉬어야 다시 시작할 힘이 생긴다.


생각을 바꾸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다 못해 새로운 에너지와 기쁨으로 가득 찼다.

놀랍게도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계획을 세우느라 밤잠까지 설쳤다. 아프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생각이란 놈이 이렇게나 무섭다.  

좋은 생각들의 연장선에서 김난도 교수가 제시했던 인생시계가 떠올랐다.


그래, 내 나이가 지금 몇 시지?

출처: pixabay
* 24시간 * 60분 = 하루 1,440분
* 1,440분 / 90세 = 1년당 16분
* 16분 * 내 나이 = 나의 인생 시간

90세를 평균수명으로 가정하고 내 나이를 대입해서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오후 12시 26분 6초.

딱 점심시간이다!


오전 시간 열심히 일한 내게 주어진 보상이자, 오후 시간을 준비하는 시간!

내 인생의 '점심시간'이라 생각하니 안도가 될 뿐만 아니라 환희가 차올랐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쳤던 기쁨이 이런 것이었을까!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와 커피를 나누고, 공원 산책을 가볍게 즐긴 후
업무 시작 10분 전 양치를 하고 단정하게 매무새를 정성스럽게 매만진다.
그다음엔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오후에 할 일들을 쭉 정리하는 것.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나에게 주어진 점심시간을 충분하게 누리는 것이다. 후회 없도록.  




#디파짓챌린지 #부지런21일챌린지 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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