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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치즈 Nov 13. 2024

뜻하지 않던 휴일

깜짝 선물

“또 해프데이 (half-day)라고? 왜?”

“몰라요, 무슨 베테랑데이(veteran day)라던데?”

“아니, 네가 전쟁에 참전했던 것도 아닌데 왜 쉬라는 거지? 참 이상한 학교네…”

“아빠, 그분들께 감사하는 날이지. 그리고 우리 학교만 쉬는 게 아니고 다 쉬어.”

“그래? 공부하면서 감사하면 되지. 참으로 이상한 나라네…”


어제저녁 거실에서 뒹굴거리던 두 부녀. 둘 간의 대화를 슬쩍 듣자니 피식 웃음이 난다.  오늘 학교 수업이 12시에 끝날 거라는 아이의 말에 은근 발끈하며 아이의 말에 어깃장을 놓는 남편. 아니나 다를까 아이와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부엌에 있는 나에게 달려와 고자질하듯 말한다.

‘아니 내일 학교 해프데이래. 왜 또 쉬는 거지? 미국의 학교는 이래서 문제야. 매일 쉬어.’


코비드 이후 재택근무를 하면서 남편은 아이들의 학교 쉬는 날을 나보다 더 열심히 체크하기 시작했다. 어쩔 땐 나보다 더욱 주부마인드인 듯하다.


맞벌이에다 재택근무로 둘 다 툭하면 화상회의를 하는 중 매일이 정신없다 보니  ‘집안일은 시간이 되는 사람이 틈틈이 하는 것’으로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지 오래다. 본의 아니게 우리 회사는 점심시간이 따로 없는 회사고 (대부분 책상 앞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일한다) 남편은 12-1시까지 쉬는 텀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책상을 떠나 빠르게 쌓여있는 설거지를 한 후 낮잠을 자는 등 자신만의 쉬는 시간을 갖는다. 고로, 이 시간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는 남편이 자연스레 아이들의 점심을 차려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어쩔 수 없이 (?) 육아 및 집안일 등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남편의 역할을 볼 때 아이들의 학교 유무는 그에게 중요한 문제다. 


이른 아침,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잠시 훑어본 회사 일정.

‘오호라 횡재다, 오늘 우리 회사도 오늘 쉬는 것 아닌가!’


보통 국가지정 휴일이 아니면 학교는 쉬어도 대부분 일을 하기에 당연히 일하는 날인 줄 알았던 것이다. 갑자기 마음에 햇살이 들어온 듯 따사로워지면서 바다 같은 크고 넓은 여유로움이 생긴다.

창문을 열고 잠시 기분 좋은 멍 때림을 하다 남편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시간,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 책을 보다 나도 모르게 30분간 아침 낮잠을 자버렸다.


일어나 보니 남편은 오늘도 열일 중. 회사 사람들과 회의 중이다. 조용히 뒷문으로 나가 50분 간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다 온다.  돌아오는 길, 내친김에 차를 타고 나가 아이들 점심거리 및 이번주 음식장까지 보고 왔다. 양손 가득 밖에서 들어오는 내 모습에 놀란 남편.


“언제 나갔다 왔었어? 난 밑에서 일하는 줄 알았어.”

“응, 나 오늘 회사 쉬어서 애들 점심 먹을거리랑 다 사 왔어.”

“오 너무 잘했네, 잘했어. 자기도 푹 쉬어.”


순식간에 자신의 ‘점심 담당’ 일이 갑자기 사라진 것에 너무 흡족해하는 모습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이들 학교 일정이 짧게만 느껴졌는데, 일을 안 하니 아직도 나만의 시간이 2시간이나 남았다. 절로 나오는 콧노래. 다이어리 꾸미기, 노래 듣기, 보고 싶었던 강의 듣기 등 하고 싶은 일 중 뭐부터 할까 달콤한 고민 중이다.  


항상 모든 걸 계획하는 형이기에 ‘뜻하지 않는 자유 시간’이 예상치 않은 깜짝 보너스 선물 같은 느낌이다.  월요병은커녕 어느 때보다 배는 행복한 월요일 아침. 미국 참전 용사님들 덕분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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