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친구들과 놀고 있는 딸을 픽업하기 위해 약속 장소 근처에 도착했다. 나오라고 전화했더니 갑자기 카페에서 친구들을 우르르 데리고 나와 인사를 시킨다. 이럴 줄 알았으면 꽃단장이라도 하고 나올 것을. 갑자기 민망해진다.
“엄마가 내 친구들 궁금해할 것 같아서 데리고 나와서 인사시켰지.”
아직까지 Z세대 아이들의 문화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 사춘기 아이들 모임에 괜히 끼어들어 '눈치 없는 코리안 맘'으로 보이기 싫어 전화로만 나오라 했는데, 아직은 자신의 일상을 엄마와 편안하게 공유하는 딸이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네 친구들을 볼 줄 알았으면 파우더라도 바르고 나올걸. 너무 편안하게 나왔네."
"걱정 마, 엄마. 엄마는 우선 피부가 좋고 항상 웃고 있어서 친구들이 다 예쁘다고 생각해요."
하긴, 다른 건 몰라도 첫인상이 밝고 좋다는 소리는 많이 듣긴 한다. 신기한 건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웃는 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어릴 때부터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양쪽 입꼬리가 살짝 내려가 자칫 잘못하면 울상으로 보이는 게 불만이었다. 눈으로 아무리 웃어봐야 무슨 소용인가. 화룡점정은 입꼬리인데 말이다. 고로 사진을 찍을 때나 타인과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미스코리아처럼 앞니가 살짝 보이게 힘을 줘서 입꼬리를 올리려 신경을 썼다.
그런데 대학시절이 우연한 기회로 나의 입꼬리에 대한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었다. 대학 시절 고시 준비를 하던 친한 친구가 용한 점집을 몇 달을 기다려 드디어 가게 됐는데, 막상 가려진 떨린다고 같이 가자고 한 것이다. 내 생애 첫 점집이라 나 또한 긴장이 됐다. 눈을 부릅뜨며 친구에게 카리스마 있게 말하던 아저씨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보더니 말하는 게 아닌가.
“이 친구 관상이 좋네. 이마도 훤하고, 눈썹 보니 머리도 똑똑하겠고. 코도 재물이 들어오는 복코요, 턱보니 말복도 좋겠구나.”
흠칫 놀란 가운데에도 이때다 싶어 궁금한 걸 용기 내 물어봤다.
“입은 어때요? 사실 제가 입꼬리가 내려갔거든요. 가만히 있으면… 보세요. 이건 나쁜 건가요?”
"그건 네가 전생에 호랑이였어. 호랑이가 칼을 문 입의 상이로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큰일을 했을 텐데 안타깝다. 동물이 사람으로 환생하기 어려운데 네가 어떻게 태어난 줄 알아? 어느 날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것이 큰 죄라 스스로 생각하여 큰 칼을 입에 물고 그날로 살생을 안 하겠다고 다짐한 거야. 그리고 실제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다 결국 굶어 죽었지. 그걸 애틋하게 여긴 하늘이 이번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 거고. 그래서 정직하고 책임감이 강하구나. 게다가 입도 무거울 거야. 사람으로 태어난 소중한 생이니 잘 써. 그 입이 증표야. 모양새만 보고 불만이라니."
갑자기 알게 된 전생의 비밀. 게다가 살생을 하지 않아 사람으로 환생한 호랑이었었다니. 얼떨떨하면서도 마치 재미있는 전래동화를 듣는듯했다. 물론 그 말을 전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내 입꼬리를 바라보는 내 시선이 조금은 따스해졌다. 사진 찍을 때마다 조금 더 신경 쓰며 웃는 게 대수인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남다른 입꼬리'인데 이 정도 노력은 감수해야지.
어쨌든 긍정적인 마인드로 오랜 시간 트레이닝된 나의 입꼬리는 어릴 때보다 지금, 훨씬 더 올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웃는 상'으로 생각할 정도면 이미 성공적인 듯. 이렇게 계속 연습하다 보면 눈 감는 날, 누구보다 온화한 '모나리자의 미소'를 머금을 수도 있으리. 우아한 미소를 장착한 나의 모습을 그려보며 다시금 힘주어 입꼬리를 살짝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