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눈'을 내려주소서
큰 아이 만 5살 무렵, 유치원에서 Father’s Day를 맞이하여 반 아이들 아빠들을 초청해 다과 파티를 열었다. 유치원 반 앞에 도착한 남편 앞에는 앞서 온 몇몇의 아빠들이 있었고 선생님은 한 명씩 인사를 한 뒤 바로 아이 이름을 호명하여 아빠를 모시고 가게 했다.
이윽고 우리 남편 차례. 남편과 인사를 나눈 선생님이 남편을 빤히 보고 나서 물어봤단다.
“그런데... 누구 아빠신가요?”
첫 딸은 대부분 아빠를 닮는다는데 우리 집 부녀에게는 딱 들어맞는다고 하기 힘들다. 다른 곳은 다 아빠를 닮았지만 첫인상에서 가장 크게 눈이 너무 달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둘을 바로 매칭하지 못한다. 딸의 눈크기가 남편의 3배는 되지 선생님이 바로 캐치를 못하시는 것도 당연한 터.
며칠 뒤 유치원에서 보내온 이 날 찍은 '아빠와 아이들' 단체 사진을 보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빠 무릎에 앉아있는 반 애들을 보는데 (특히 딸들) 인종에 상관없이 하나같이 아빠들을 꼭 닮은 미니미였다. 게다가 대부분 첫째 아이인걸 보니 큰 아이에게 유독 아빠의 유전자가 강하게 가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자기야 나 보지 말고 자기 어릴 적 사진 봐. 내 눈 말고 자기 눈 닮아야 하는데... 걱정이야.”
뱃속의 아이 성별이 딸이라는 것을 안 남편은 너무 좋아하면서도 그날부터 단춧구멍 같은 자기 눈을 닮을까 노심초사였다. 눈만은 진한 쌍꺼풀에 보통 사람들 1.5배 크기의 눈을 가지고 있는 나를 닮아야 한다는 것.
“왜? 쌍꺼풀이 있어야 예쁘다는 건 자기 생각이지. 요즘은 쌍꺼풀 없는 큰 눈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분위기던데. 김연아 봐봐. ”
“김연아는 내 눈보다 훨씬 크잖아.”
뭐가 그리 걱정인지. ‘아이가 임신 때 자주 보는 사람을 닮게 된다. 그래서 예쁜 사진을 봐야 한다.”라는 말을 어디서 듣고 와서는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거울에 붙여진 내 어릴 적 사진과 톰크루즈의 딸 수리의 사진을 보라며 잔소리를 해댔다. 하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하지 않았나. 수리 같은 딸이면야 너무 예쁘고 귀엽겠지. 나 또한 출산일까지 일기를 열심히 쓰면서 예쁜 아기 사진들을 많이 스크랩했던 것 같다.
남편의 걱정을 알았을까. 남편의 바람대로 아이는 '진한 쌍꺼풀에 예쁜 큰 눈'을 갖고 태어났다. 눈만 빼고 아빠를 빼다 닮은 딸.
“자기야 눈이 커!!!”
아이가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아이를 받아 가만히 안고 아이를 쳐다보고 있던 남편. 눈을 감고 있는 아이를 한참 말없이 들여다보다 아이가 그 큰 눈을 뜨자마자 너무 기뻐하며 외친 첫마디다. 감탄해 마지않던 그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하다. 저리 좋을까 하며 피식 웃음이 났던 기억도.
'어쩜 엄마, 아빠 예쁜 곳만 닮았냐'라고 주변에서 감탄할 정도로 사실 외모로만 보면 우리 딸은 우리 부부의 최고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어이구야… 이쁘기라도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그나마 천만다행이지.”
오늘도 거의 쓰레기통을 방불케 하는 딸아이의 방. 난장판인 아이의 방을 보던 깔끔쟁이 남편이 오늘도 한숨 섞인 말을 한다.
“암, 예쁘기로는 최고지.”
북 치고 장구치고 그의 혼잣말을 계속 들려온다. 모든 아빠들은 딸바보라는데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큰 눈까지 갖고 태어난 딸이니 오죽 예쁘랴. 큰 눈 덕분에 우리 딸은 오늘도 은근히 까탈스러운 남편의 잔소리를 무사히 넘긴다.
딸아, 오늘도 네 큰 눈이 너를 살렸구나.
엄마한테 크게 감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