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IME] 프롤로그:엄마이기 전에, 나

by 봄치즈

오전 5시 50분. 평상시보다 10분 일찍 알람이 울렸다.


맞다. 오늘은 아이 도시락을 싸주는 날이지. '학교 주문 음식이 너무 맛없다'며 이번 주부터 일주일에 세 번씩 직접 도시락을 싸달라던 아이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치킨 너겟 네 조각, 플레인 피자, 혹은 베이글 등 누가 봐도 영양가 없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미국 학교 메뉴를 확인해 본 엄마라면 당연히 매일같이 싸주고 싶은 마음이리라. 그러나 차마 '매일 싸주겠다'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안 그래도 바쁜 아침 시간, 매일 싸달라고 하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다는 마음이 드니 일하는 엄마로서 이 또한 미안해진다.


다행히 어제 미리 삶아놓은 파스타와 만들어놓은 소스들이 있어 15분 내로 부리나케 만든다. 동시에 아이들의 아침까지 준비하면서 아이들을 불러 깨우기 시작한다. 나 또한 나갈 채비를 해야 하니 팔이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때 또다시 울리는 알람. 그와 동시에 습관 앱에 저장해 놓았던 내 메시지가 팝업창으로 나타난다.


'창문 열고 심호흡 세 번과 함께 따뜻한 물 천천히 마시기.'


순간 부산하게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췄다. 오늘의 나를 위해 스스로 무조건 꼭 지켜야 할 항목으로 정해놓은 시간이다.


곧장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창문을 연다.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겨울의 찬 기운이 여전히 남아있는 가을 낙엽의 농익은 내음과 함께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빼곡한 아침 투두리스트에 집중되어 있던 예민한 나의 신경들이 느슨해지는 순간이다. 비로소 들리는 뒤뜰의 새소리. 이어 따뜻한 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니 마음 한편에 따뜻한 여유로움이 찾아온다. 단 몇 분의 시간이다. 아침의 고요함을 만끽하는 길지 않은 이 시간, 오늘 하루를 감당할 긍정의 에너지로 마음이 새로이 충전된다.


하루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어떤 회사의 직원으로 불리며 그 역할에 모든 에너지를 쏟다 보면 종종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열심히 가고 있는 듯하지만 방향성을 잃은 무모한 질주가 번아웃을 가져오기도 한다. 게다가 16년 차 타향살이에서 느끼는 외로움에서 오는 공허함까지 몰아치면, 그것이 주는 적지 않은 후유증을 알기에 스스로를 위해 무던히도 많은 것을 시도하고 노력하고 애써왔는지 모르겠다. 100%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주변 지인들에게 실망하기보다는, 그럴수록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나 자신에게 의지하기로 했다.


적은 시간이라도 진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엄마, 아내, 직장인이 아닌 '진짜 나'의 본연의 모습은 어떠한지, 그동안 내 관심에서 밀려나 있었던 그 자아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떠한 성향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해야 행복한지, 어떤 부분에서 충족감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것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그러한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에 오기까지 더없이 힘들고 지치고 외로웠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들어 주변 비슷한 입장의 엄마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이는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지금껏 미국의 워킹맘으로 살아오며 느낀 고민들,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찾아낸 작은 지혜들, '진짜 나'를 찾기 위해 했던 노력들, 그리고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까지. 소소한 이야기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그간 부단히 노력한 나에게는 '기록이라는 선물'을 주고, 매일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바쁜 엄마들에게는 글로나마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것.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루 중 단 10분이라도 가족을 중심으로 달려온 엄마들이 가열차게 달려온 그 발걸음을 늦추고 가쁜 숨을 잠시 고를 수 있길.

오롯이 나만을 위한 힐링 타임을 만들 수 있길.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길 바란다.


당신은 소중하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지금 잠시 쉴 자격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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