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IME] 올빼미 엄마의 미라클 모닝

고요한 아침이 나를 살렸다

by 봄치즈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것이 내가 올빼미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이유였다. 누가 시킨 것도, 거창한 결심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 중 단 10분만이라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고요한 시간이 너무나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세상을 멈춰 세웠던 그 시절, 하루아침에 모든 학교와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직장인들은 일제히 집으로 돌아와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항상 각자 바빴던 온 가족이 하루 종일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다니.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처음에는 즐겁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내 하루는 평소보다 두세 배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는 어리둥절하며 줌 미팅으로 수업에 참여해야 했고, 나는 그 옆에서 계속 산만해지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면서 연신 필요한 자료들을 갖다 주며 거의 함께 수업을 들어야 했다. 어느 정도 컸으니 둘째보다는 잘하고 있으리라 믿었던 큰 아이. 잠옷차림으로 배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은 채 침대에 드러누워있다시피 하며 줌 수업을 듣고 있으니 두 아이를 넘나들며 감시 아닌 감시를 해야 하는 혼돈의 시기였다. 그와 동시에 끊임없이 쏟아지는 회사 채팅창에 답변을 하고 틈틈이 잡히는 화상 미팅에 얼굴을 내밀어야 했으니 일을 하면서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파악이 안 되기 빈번했다. 그 사이사이 부엌을 들락거리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식사를 차려 아이들 세끼를 챙겨줘야 했으니. 정작 나는 밥도 거른 채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아이들 식사 시간만이라도 일에 초집중을 하고자 했다.

그야말로 엄마, 직장인, 아내. 그 경계가 완전히 무너진 채 하루 24시간이 뒤엉켜 돌아가고 있었다.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고로 그 시기 '코로나 우울증'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접하게 되는 이혼율 급증 기사는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두 달째를 맞이하니 가장 간절하게 된 것은 단 10분만이라도 좋으니 '완전한 고요 속에 나 혼자만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8시만 되면 잠들던 아기 때와는 달리 점점 잠자는 시간이 늦어지는 아이들과, 새벽이면 더욱 말짱해지는 올빼미 남편 덕분에 자기 전까지도 밤 시간은 부산함의 연속이었다. 결국 따져보니 온 집안이 조용히 잠든 이른 아침만이 유일하게 나만의 것이 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 또한 전형적인 올빼미 체질이었던 터, '미라클 모닝'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이야기였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향한 열망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졌다. 때마침 '아침형 인간'에 대한 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여러 가이드 중 '매일 10분씩만 일찍 일어나 보라'는 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거창한 목표는 오히려 시작을 늦추는 법. 가장 부담 없어 보이는 '10분 일찍 일어나기'를 바로 시도해 봤고, 놀랍게도 그 방법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생각보다 쉬 눈이 떠진 그 첫날의 아침 10분은 여전히 기억나는 순간이다. 산뜻한 새소리가 들리는 뒷마당으로 나가 따뜻한 물 한 잔을 천천히 음미했을 때, 아직은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슴속으로 크게 들이쉬었을 때 함께 스치던 코끝의 향긋한 그 봄내음이란. 그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 아침의 그 고요한 순간에 느끼게 되는 가슴속에 차오르던 충만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온전한 행복감이었다. 그 설렘을 느끼고 난 후, 아침 일찍 눈을 뜨는 일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너무도 기다려지는 일'이 되었다.


3일 후엔 10분 더, 일주일 후에는 또 10분 더 일찍 일어났다. 그 행복감을 조금 더 누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기상 시간은 조금씩 앞당겨졌고, 어느새 예전보다 30~40분 일찍 눈을 뜨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신기한 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스스로 눈이 떠진다는 것이었다. 침대에서 일으키기 힘들던 천근 같은 몸이었건만, 어느 순간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려는 즐거운 마음에 서둘러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 기간 읽었던 배철현 교수의 책 <심연>과 <수련>에서 읽은 문장들이 그야말로 몸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루 중 단 몇 분이라도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침에 나를 만나는 사람이 결국 삶의 주인이 된다.

이렇듯 새로이 맞이하게 된 '혼자만의 아침'은 내 하루 전체의 결을 바꾸어 놓았다. 고요함으로 충만해진 마음으로 아이들을 깨울 때는 목소리 톤부터 달라졌고, 아침마다 종종걸음 치던 분주함 대신 발걸음에도 느긋한 여유가 담기기 시작했다. 사실 하루 일정을 보면 달라진 것이라곤 조금 일찍 눈을 떴을 뿐 이전과 똑같았다. 그럼에도 하루를 시작하는 내 마음 상태가 달라지자, 그날 하루를 바라보고 이끌어 가는 내 모습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전 세계의 큰 재앙으로 모든 것이 마비된 듯 집에서 갇혀있었던 그 다섯 달의 팬데믹 기간 덕분에, 아침 시간과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가치를 온몸으로 깨달으며 이후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전환점을 갖게 됐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물론 수면의 질과 양도 중요하기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할 때는 과감히 늦잠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난히 분주할 것 같은 날이면 어김없이 10분 더 일찍 눈을 뜨고, 여유로운 주말이면 그 충만함을 조금 더 누리고 싶어 평일보다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발견한다. 여전히 내게 하루를 살아가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는 '혼자만의 아침 시간'. 마땅히 누려야 할 인생의 기쁨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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