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의 호된 환영식

워킹맘의 주경야독이 시작되다

by 봄치즈

또다시 머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지난주부터 종종 겪어 온 편두통이라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것 같다.


'애들아 빨리 움직여야 되는 시간이야.' 나의 좌뇌에 조용히 말을 걸어본다.


'할 수 있다!'는 열정으로 시작하기로 한 대학원 공부. "또 대학원을 간다고? 일도 하면서. 그것도 지금 그 나이에. 항상 대단한 언니, 축하해!" 언제나 내 일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여동생의 카톡 문자에서 '나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서야 깨달았다. 아 내가 공부하기에 너무 나이가 들었구나. 웬만해서는 나이를 물어보지 않는 미국에서 지내서 그런가. 대학원 지원할 할 때까지만 해도 나이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동생의 말이 조금은 걸렸지만 그러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과거 한국에서도 일하면서 대학원 다녀봤잖아.


그러나 가을 첫 학기가 시작된 지난주 (8월 말에 시작이라니!), 첫 시간부터 폭풍처럼 쏟아지는 강의와 숙제들을 보고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게다가 모든 것을 영어로 들어야 하니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 됐다.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그 이후부터는 내용 파악이 전혀 안 됐다. 게다가 문과생 출신이 이과 수업을 듣자니 아무리 째려봐도 컴퓨터 언어는 쉬 머릿속으로 들어오지가 않았다. 나름 좌뇌가 발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다니는 젊을 애들을 보니 누가 봐도 난 우뇌만 발달한 인간 같았다.


'지금이라도 과목을 드롭시켜야 할까.' '내가 무슨 낙을 바라고 이걸 시작했을까.' 대학원 붙기를 바라던 예 저녁의 간절함이 어디 가고 학교 시작과 동시에 후회감이 계속 몰려왔다. 일이 끝나자마자 수업 듣고 틈틈이 식구들 저녁 챙기고 아이들이 자고 나서야 시작하게 되는 나만의 공부. 새벽녘이 다 되어도 끝내지 못한 숙제를 보면 자꾸 부정적인 생각만 떠오르는 지난 일주일은 한 숨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지속되는 시간들이 힘겨웠다. 그러던 와중 매일 조금씩 읽던 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의 책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을 지난 주말 완독 하면서 '포기'의 버튼을 누르던 나의 마음에 제동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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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언제라도 깊은 마음의 평화에 접속할 수 있고 이를 도와주는 우뇌의 의식을 일깨우는 방법이 있다. 즉,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의 와중에도 행복한 마음 상태에 접속할 수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온 질 볼트 테일러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그녀의 좌뇌의 기능을 모두 상실하고 만다. 이후 한 동안 좌뇌의 주요 기능인 언어, 숫자, 기억 등 실생활의 주요한 능력들 없이 오직 우뇌에만 기댄 채 지내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기간 동안 그녀는 우뇌에서 주는 마음의 행복감과 평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듯한 (일명 '스피릿 모먼트', 혹은 '열반'이라고 불리는) 기쁨을 실제로 느끼고 그것이 삶에 주는 중요한 기능에 대해 직접 체험을 하게 된다. 오랜 기간의 노력으로 좌뇌의 기능을 회복했지만 우뇌가 주는 행복감은 '좌뇌 치료를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고였다. 그녀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누구나 노력만 한다면 좌뇌 및 우뇌의 기능을 확장시키고 필요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여 각 뇌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좌뇌로 에너지를 소모했다면 우뇌로 재충전을 하여 내 삶의 균형점을 찾으라는 그녀의 말은 실로 공감되면서 내 삶에 적용시키고 싶은 것이었다.


보통 뇌 관련 책을 보게 되면 읽은 후 나는 좌뇌형 인간인가 우뇌형 인간 인가로 나를 분석하려고만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동안 나는 뇌의 어느 부분에 신경을 못썼을까 그리고 앞으로 그 부분에 어떻게 관심을 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 것 같다. 또한 이 책이 다른 심리학만 정신 분석 책과 달랐던 것은 뇌에 대해서 연구해 온 전문가가 직접 경험한 것을 과학적인 근거로 분석을 한 책이라는 점이다. 두리뭉실하게 이해되어 온 것들에 대해서 보다 확실한 증거를 얻은 듯한 느낌이랄까.


우뇌에 스위키를 켜는 법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한 최근의 일상 속에서 저자 질 볼트 테일러가 말하는 '행복한 마음의 평정 상태에 도달하는 법' 그 방법이 너무 궁금했다. 방법은 그 순간 내 모든 감각 (청각, 후각, 시각, 촉각 미각)을 열고 그 순간에 100% 몰입하는 것이다. 간단히 요약을 해보면:


후각: 기분을 좋게 혹은 나쁘게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은 코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오늘 당장 좋아하는 오일을 사서 쉼의 시간이 필요할 때 그 향을 깊이 맡아보자.

청각: 지금 내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산책을 할 때 들리는 자연의 소리는 나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일깨워준다.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해 보자. 상대방이 공감받는 생각에 소통이 활성화되면서 그 즐거움도 커진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분석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듣는 것도 지금 여기에 몰입하는 좋은 방법이다. 소리에 감정과 몸을 다 맡겨보자. 리듬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흔들거나 춤을 춰보자.

촉각: 치료에 볼 때 감촉만큼 친밀한 것도 없다. 좋아하는 느낌의 인형을 만지거나 샤워기에 떨어진 감촉만으로도 마음의 색이 달라질 수 있다.

미각: 음식의 맛에 집중하고 그것을 온몸으로 느껴보자. 새로운 깊이감을 맛볼 수 있다.

시각: 자세한 디테일을 보기보다는 산 정상에 올라 긴장을 풀고 앞을 바라보면 오른쪽 뇌는 열린 조망의 장대함을 받아들여보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한다면 일상생활에서 겪는 모든 일들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면서 올여름 시작 전, '올여름에는 그 간 하고 싶었던 것들에 더 열심히 해보자'라는 다짐으로 시도했던 많은 것들 - 낭독, 노래 배우기, 걷기, 모닝 페이지, 명상 - 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모두 우뇌와 관련되는 것들, 내 오감을 많이 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들이었다.


평상시에도 내 시간의 짬을 내기가 녹녹지 않은 직장맘이었다. 게다가 하는 일도 다분히 이과적인 일. 잘 돌아가지 않는 좌뇌를 억지로 돌리느라 저녁이면 피로감 올려오지만 여기에 대학원 공부까지 해야 하니 '그 삶의 균형점을 잘 찾아보라'는 하늘의 뜻이었던가. 올여름 부단히 도 틈틈이 내 오감을 열어 평정심을 얻는 노력들을 스스로 많이 해온 것이 비단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좌절감이 극에 달했을 때 완독을 하게 된 질 볼트 테일러 박사의 책.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두 개의 뇌가 있기에 그것들의 기능을 선택적으로 자유롭게 발휘하면서 스스로 내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는 그녀의 확신이 힘겨운 시작점에서 새로운 희망과 위안을 주었다. 이 모든 것들을 만나게 되었음에 감사함이 든다.


월요일 새벽녘, 몇 시간 후면 일을 시작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코딩은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또다시 몰려오는 좌절감. 결국 자는 둥 마는 중 몇 시간 눈을 붙였지만 정해진 이른 아침 시각,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나갔다. 새소리, 바람소리 등 오감을 열고 활기에 찬 시작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려고 노력했다. 신기하게도 20분 달리기 이후 좌뇌가 느슨해지면서 초조했던 마음이 평안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집으로 다시 들어서는 순간 스스로 건넨 긍정의 말은 '잘 버텨보자!'


아마도 좌절, 충전, 다독임으로 이어질 이번 첫 학기.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한 순환구조로 제대로 버틸 수만 있다면 올 한 해는 충분히 성공적일 수 있으리라 본다.


여러 취미 생활로 마음을 충전시키게 해 준 올여름에 감사함을 전하여 녹록지 않을 올 가을 동안 그 에너지 잘 활용 해보겠다 마음을 단단히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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