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나를 변화시킨 그날의 경고

중년의 체력에 무시할 수 없는 운동과 영양제의 힘

by 봄치즈

오후 3시 어김없이 알람이 울렸다. 사실 한 번 앉으면 좀처럼 잘 일어나지 않는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아하는 성격이다. 그만큼 '무거운 엉덩이'로는 누구한테도 안질 자신이 있지만 이 알람에게만큼은 무조건 울리면 하던 일 멈추고 일어나야 한다. 영양제를 먹기 위해서.


"다 나를 위해서지. 이렇게 열심히 챙겨 먹어야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취미들을 더 오래 즐길 수 있거든."


어릴 적, 매일 아침 식사 후 하루도 거스르지 않고 영양제를 챙겨 드시는 아빠가 참 신기했었다. 이른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 자칭하며 자연 속 여행을 즐기시고, 맛있는 음식, 독서 및 글쓰기를 좋아하시는 다소 예술가적 기질이 많은 아빠와 '규칙적인 영양제 먹기'는 좀처럼 어울리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영양제의 양도 상당하니 오히려 그거 먹다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알람을 뒀다 뭐하니. 그러니까 다 식후 30분 후에 먹으라고 하는 거야. 오전, 오후 나눠서 알람이 울리면 난 먹기만 하면 되는데 얼마나 쉬운 자기 관리니. 그리고 소화시킬 겸 동네 산책 한 번 하고."


그래서일까. 몇 년 전 건강검진 날, 여전히 음식에 곁들인 약주를 즐기시는 아빠에게 큰 경고를 주길 바라던 엄마의 마음과는 달리 아빠는 당당히 '40대의 간 건강 수치'를 증명받았다. 이후 자신의 건강관리의 효과를 공식적으로 검증받은 아빠의 영양제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처음에는 옛 어른들의 잔소리로만 여기며 '그런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흘려 들었던 게 사실이다. 5여 년 전 그 사건 전까지. '강한 정신력이면 못할 게 없다는'는 나의 오만한 생각에 태클이 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이라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삶의 조율이 필요했거늘 그것을 무시한 결과였다. 일과 함께 병행하던 두 아이 육아로 체력이 버티지 못하고 결국 계속적으로 열과 중이염을 동반한 편도선 염증이 계속적으로 일어났고 일 년 내내 항쟁제를 먹어야 했었다.


급기야 의사 또한 편도선 절제술을 권하는 상황까지 왔지만 '최악의 수술일 것'이라는 그의 경고가 너무 무서웠다. 웬만한 수술에는 입원은커녕 바로 퇴원을 시키는 미국. '2주 정도 엄청 고통스러울 것이고, 피를 많이 토할 것이다. 그때마다 시중 타이레놀을 먹으며 자체 힐링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의사의 설명은 거의 '아파 죽으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한국에서 편도선 절제술을 받은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 수술 후 3일 정도 입원하고 아프면 진통제를 맞기에 큰 무리 없이 끝났다는데 그때만큼 한국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졌던 적도 없던 것 같다. '자가면역'을 강조하는 미국의 의료 개념이 그리 공포스러울 줄이야. 게다가 2주간의 휴가를 내려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남편 또한 2주 휴가를 내야 하는데 그 당시 회사를 막 옮긴 남편의 형편에 무리한 요구였다.


결국은 의사와 이야기해서 수술로 가기 전 모든 방책들을 다 시도해보기로 했다. 기본적인 체력을 위해 필요한 영양제부터 섭취하라는 것이 그의 첫 대안이었다. 이어 숙면을 위해 그 좋아하는 커피를 끊고 목에 좋은 유자차 및 대추 홍삼차 마시기 시작했다. 수시로 소금물 가글은 기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관심이 없는 운동을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요가를 일주일에 두 번씩 강제적으로 했고, 그나마 즐기는 매일 걷기도 이른 오전 루틴으로 집어넣었다. 영양제의 달인 아빠의 조언이 빛을 발하는 시점이었다. 의사만큼 경험으로 다져진 아빠의 의견은 꽤 전문적이었고 왜 진작부터 안 들었을까 후회도 됐다.


영양제 챙겨 먹기는 여전히 귀찮은 일이다 (아빠보다 한 참 적은 양을 복용함에도). 그러나 운동 및 영양제 먹기를 시작한 후 신기하게도 일 년에 8번 복용하던 항생제 횟수가 그다음 해에는 4번, 그다음 해는 한 번으로 줄었고, 그 이후에는 매 계절 시달렸던 감기에조차 걸린 적이 없다. 이제는 영양제 안 먹는 사람에게 나서서 추천해주니 그 옛날에 신기해 마지않던 아빠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코비드 팬더믹 기간, 마스크 한 번 안 쓰는 사람들도 많은 미국에서 아직 코비드 조차 걸리지 않은 걸 보면 (설사 증상 없이 지나갔다 했다손 치더라도) 항상 골골대는 저질 체력을 감안할 때 스스로에게 있어 실로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너무 아파서 자다가 일어나 숨죽여 울고. 남편은 어린아이들을 봐야 하기에 혼자 고열 상태에서 응급실로 운전해 가야 했던 그 서러웠던 순간들. 지금에서 돌아보면 일생일대 가장 감사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그 정도의 경고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고착되어온 '일과 육아에 매몰된' 기존 일상에 변화를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 몸이 아프면 나만 고생이다."

"누가 알아주기 전에 스스로 챙겨라."


과거 부모님들이 말씀해주신 꼰대 같은 충고들은 진작부터 새겨들어야 할 말이었거늘. 역시 호되게 당해봐야 크게 깨닫나 보다. 더불어 지금이라도 실행하여 스스로 건강함을 찾은 데 감사함을 느낀다.


"하루 중 피곤함을 가장 많이 느끼는 시간대를 찾아보고 그 30분 전에 영양제를 먹으면 효과가 있어요." 얼마 전 들은 의사의 조언은 아빠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의 대화를 더욱 끈끈하게 해 준다. 이제는 '건강'이라는 화두에 나 또한 신나게 말할 거리가 많아진 중년이 된 것이다.


"엄마, 비타민 먹어야 되는 시간이에요."


소파에 있던 아이가 알람을 듣고 알려준다. 그 옛날 신기한 눈으로 아빠를 바라봤던 나처럼 우리 아이의 눈에도 이런 내가 의아스럽겠지. 언젠가 딸아이가 '스스로를 위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배려'로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깨닫는 순간에 아빠가 그러셨듯 그 순간 내가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일에 있어서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에도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 더 오랫동안 내 인생을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아빠의 말씀을 떠올리며 이 '작은 귀찮음'을 오늘도 흔쾌히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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