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의 행복한 최강 동안을 고대하며
"우리 예쁜 큰 딸 생일 축하해. 함께하지 못해 늘 아쉬운 마음이네. 오늘은 특별히 다른 날보다 더 많이 웃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지금이야말로 가장 젊고 예쁘고, 행복한 날인 거 알지?"
간 밤부터 내리는 부슬비 때문인가. 유난히 일으키기 어려운 몸을 이끌고 시작한 이른 아침. 커피 한잔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생일날 아침을 밝혀주는 엄마의 따뜻한 문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 오늘 내 생일이지.
"고마워요 엄마.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즐겁게 지내볼게요."
행복감을 주는 엄마의 글에 잠시 내 최근의 일상을 돌아본다.
사실 동갑인 남편과 딱 이틀 차이로 있는 생일이기에 잊어버리긴 쉽지 않다. 그저께 작년보다 숫자 하나가 더 커진 남편의 생일 케이크 초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중년으로 들어서면서 솔직히 나이 듦의 행복감보다는 '아니 벌써?'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곤 한다. '나이 먹을수록 시간은 더욱 빨라진다'는 옛말을 틀리지 않은 데다 점점 딸리는 체력 때문인지,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진 중년의 욕심 때문인지 최근에는 매일을 채우는 많은 일정들을 좇아가다가 여유 없이 하루를 보내는 느낌이 종종 들 때가 있었다. 그런 시점마다 엄마의 말씀을 떠올려 나를 멈추게 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네 나이대가 가장 바쁘면서도 행복한, 가장 빛나는 시기였던 것 같아. 엄마로서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그러면서 인생도 풍부해지고. 솔직히 화장은커녕 거울 들여다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주는 즐거움을 느껴서 그런가 사진 보면 그때만큼 가장 예쁘고 젊은 시긴도 없었던 것 같아. 그래도 시간 날 때마다 얼굴 들여다보면서 많이 웃어. 즐겨야지 젊음도 온다. 즐길 체력도 물론 있어야 하겠고."
3살, 7살 한창 손이 많이 가는 나이의 아이들을 키울 무렵, '너무 바쁘고 몸이 힘들다'는 하소연에 엄마가 해주시던 조언. 고맙게도 이 말씀은 숨이 턱까지 차 오를 때마다 스스로에게 '내 마음의 여유'를 주어 매일의 균형점을 찾게 해 주는데 도움을 주었다. 어느덧 사춘기 문턱에 들어선 성숙해진 딸아이를 볼 때마다 그 시절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많이 즐길 수 있어 감사하고, 그 추억들로 행복감에 젖을 수 있을 수 있으니 이 보다 더 큰 행운이 어디 있으랴.
통화 중, 엄마에게 한 질문이 기억이 난다.
"엄마, 그러면 엄마는 가능하다면 다시 내 나이로 돌아가고 싶어?"
"아니, 절대 아니지. 솔직히 그립긴 해도 다시 돌아가긴 싫다 애. 사실 그보다 더 열심히 못 살 것 같아. 최선을 다 했거든. 그리고 지금 너무 행복해. 물론 네 나이도 젊고 좋지만 지금 내 나이도 훗날 그 시점에서 돌아봤을 땐 너무나 부러울 젊은 나이잖니. 그때 가서 즐겁게 지금을 추억하려면 하루하루 더 재미있게 살아야지. 엄마 요즘 합창 연습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너무 바빠."
질문이 끝나기도 답변을 하셨다. 사실 돌아가고 싶다고 하실 줄 알았건만. 그러나 그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될만하다. 그만큼 지난날에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도 없으신 것이다. 그리워는 하지만 추억으로 즐기겠다며 다시 돌아가기는 우아하게 거절할 수 있는 엄마의 인생이 존경스러웠다.
그때 나눴던 엄마와의 대화는 지친 마음이 컸던 그 기간의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죽기 전 나는 지금 이 장면은 어떻게 회상할까.
다시 돌아오고 싶다며 한 없이 그리워할까.
... 할걸 하고 행여나 후회하진 않을까.'
이 같은 생각들은 모든 순간의 장면들을 다른 각도로 보이게 했다. 찡찡거리는 아이의 우는 모습은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소중한 장면이 되어 다가왔고 나도 모르게 웃음 지으며 아이를 안아주게 했다. 아이와의 놀이 또한 훗날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아이의 기억 속에 남을 시간들이었다. 지긋지긋한 설거지, 빨래 개키기도 한 달 뒤에 죽을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부러울 일상. 지금은 좋아하는 노래나 오디오 북을 듣는 '힐링 시간'으로 이용한 지 오래되었다.
다시 오지 않을 현재를 소중히 즐기는 방법. 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내 던지고 싶은 힘든 순간들도 '감사한 웃음을 짓게 하는 장면'으로 전환시키는 마법 같은 방법이었다. 엄마의 대화에서 얻은 이 같은 놀라운 처방은 5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바쁜 내 일상에서 마음의 큰 기복 없이 적재적소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니 그 어떤 것보다 내 삶에 있어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OO년생이세요? 어머 나이보다 정말 젊어 보이세요."
가족들 모임에 참석한 어젯밤 웬일로 계속적인 칭찬이 쏟아진다. 물론 어색한 분위기 전환용 멘트라 생각하지만 최강 동안을 자랑하는 남편과 다닐 때면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기에 괜히 어깨가 우쭐해진다. 아마도 오랜 기간의 마음가짐이 만들어 준 선물이 아니었을까. 나를 위한 매일을 위해 노력해온 스스로에게 '그 간 잘 해왔다' 그 공을 돌려본다.
혹시 알까. 이렇게 매일을 즐기며 젊은 마음으로 산다면 5년 후에는 '실제로' 최강 동안 남편을 이길 수 있을지. '다른 날 보다 특별히 더 많이 웃고 즐겁게 지내라'는 엄마의 생일 축하 메시지에 더 크게 입 벌려 웃음을 지어본다. 왠지 더 젊어질 것 같은 행복한 아침이다.
당신의 젊음을 느껴라. 당신에게 지금보다 젊은 날은 없을 테니까.
-채드 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