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틱근무맘의 또 다른 취미
노래와 멀어진 지 오래됐다. 10여 년 전 미국에 온 이후로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추억의 노래부터 현재의 것들까지 모든 노래들을 아이폰에 다운로드하여 출퇴근 시간마다 즐겨 듣는 남편과는 달리 재택근무 맘인 나에게 있어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는 그의 출퇴근 시간은 '발 빠르게 집안 청소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등교한 후 남겨진 어수선한 공간은 곧 나의 일하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최소한 간단히 정리라도 해서 약간의 쾌적감이라도 갖추는 것이 ‘나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기에. 이후 일하기 전 잠깐의 커피타임을 갖고 싶다면 더더욱 게으름을 부리면 안 되는 시간이다.
가끔씩은 분위기도 바꿀 겸 일하면서 듣자며 과거의 추억 노래들을 유튜브를 찾아 틀어보지만 이상하게 일에 집중을 하게 되면 나중에는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과거에는 음악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는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한 시라도 그것에 마음이 뺏길까 ‘오늘 할 일’에만 전력투구하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은 서글프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즈음 ‘일주일에 한 번씩 30분간 내가 좋아하는 혹은 좋아했던 노래를 들어보자’ 결심했던 것 같다.
돌아가 보면 난 노래를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 생신마다 동생들을 훈련(?)시켜 최신 유행곡에 맞춰 공연을 기획했고 (물론 무대는 거실이다). 중학교 시절, 8 학군의 명목 하에 방과 후 공부를 혹독하게 시키던 빡빡한 학교 스케줄 중에서 합창부 활동이 있는 날은 너무도 행복했다. VIP 티겟으로 무대 앞 쪽에 앉고 싶어 용돈을 착실히 모아 혼자서라도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갔고 외운 모든 노래를 열심히 따라 부르며 잠시 뮤지컬 배우를 꿈꾸기도 했다 (생목으로 노래하는 나에게 가당치 않은 꿈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별이 빛나는 밤’ 공개 콘서트에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몰래 야간 자율학습 빼먹다 걸린 적도 있었으니 작은 일탈조차 차마 꿈도 꾸지 못하던 소심한 나에게 노래는 그만큼 큰 용기(?)를 주는 것이었다. 고 3 시절에는 늦은 밤 독서실에서 나올 때마다 매일 집까지 가는 길은 그날 하루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고 항상 함께 한 것은 <FM 음악도시>였다. 전람회 ‘이방인’을 들으며 사춘기 시절 알 수 없는 외로움에 큰 위안을 받았고, ‘거위의 꿈’ 가사를 공책에 적으며 그 시절 많은 내 꿈도 함께 써 내려간 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꿈꾸던 자유가 주어진 대학시절. 많아진 마음속 여유만큼 내 삶 속 곳곳에는 노래들이 있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모이면 빠지지 않았던 노래방. 그곳에서 우리는 은유적으로 사랑 대시를 받곤 했고, 친구가 이별의 슬픔을 맞이할 땐 울며 함께 노래해줬다. 핸드폰이 도래하기 전 새벽녘마다 내 삐삐 인사말에 넣을 노래를 몇 번씩 다시 녹음하는 데 몇 시간을 보내고, 상대방의 삐삐에 내 마음 담은 노래를 보내기도 했던 지난날들. 생각만 해도 가슴 달달 해지는 그 순간순간에는 노래가 있었다. 대학시절부터 오래 만나온 지금의 남편. 노래를 좋아는 그이기에 그와의 달달한 연애 시절 속에도 노래가 빠질 수 없다. 그가 나름 선별해서 모은 노래들로 구워 선물한 수십 장의 CD가 지금도 서재 한편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추억을 한 장면 한 장면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있듯이 훗날 지금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노래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과거처럼 그 노래에 푹 빠져 가사와 멜로디, 그 분위기에 심취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다소 획기적인 이 새로운 루틴이 자리 잡은 지금은 금요일 6시만 되면 나의 심장을 설렘으로 뛰게 해 준다. 듣기를 넘어 크게 따라 부르기까지 (그렇다고 절대 잘 부르진 않는다) 하는 이 시간이 주는 힐링은 강력했다. 최근에 열심히 듣고 불렀던 노래는 태연의 '만약에' 은근슬쩍 마음이 갔던 그 친구가 떠오르면서 지금 생각하면 귀엽기만 하는 그때의 크나큰 고뇌에 같이 공감한다. 예상치 않은 또 다른 결과는 미국 팝에 훨씬 익숙한 우리 아이들이 엄마가 좋아했던 한국 노래들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지금은 노래 시간마다 내 옆에 와 같이 흥얼거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혹시나 나중에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엄마가 들었던 노래들을 찾으며 떠올려 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아이들에게도 작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준 것 같아 흐뭇해진다. 마치 이선희와 혜은이를 노래들을 들으면 우리 엄마가 떠오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