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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치즈 Oct 12. 2022

쉽지 않은 엄마의 성장

근래 들어 나도 모르게 한 숨이 나올 때가 많다. 본래 "긍정의 마인드만 장착한다면 못할 일이 없다"며 모든 일에 있어 시작부터 자신감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최근엔 그 힘도 잃은 듯 싶다. 오히려 '그 동안 스스로 너무 자만한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드는 걸 보면. 그러면서 '역시 나이의 한계는 피해 갈 수가 없구나'라며 애꿎은 시간 탓, 나이 탓만 하게 된다. 


오늘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엄마로서 조언을 하는 나. 말 하는 중 스스로의 말에 깜짝 놀랐다.

"다른 것에 이유를 대는 건 핑계아닐까. 다른 환경이 아니라 나한테 부족한 점이 뭔지를 살펴보고 그것을 고치고 발전시켜야지. 뭐가 부족한지 아는 것만으로도 사실 큰 도움이 되거든."


세상에. 나 스스로에게 할 소리를 딸아이한테 훈계로 하고 있는 것 같아 순간 부끄러워졌다. 마치 누군가 "너나 잘해라."하는 것 같았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나 또한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주도적인 성장. 스스로 원하는 꿈을 찾고 거기에 열정을 쏟길 바란다. 그것을 위해 달려가다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금 꿋꿋하게 일어설 수 있는 회복력과 탄탄한 신념을 갖길 바란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 만한 모습을 갖추고 있을까. 어느정도 갖추고 있어야 아이 또한 보고 배우지 않겠는가. 순간 그 잣대를 거울 속 나에게로 옮겨왔다. '피곤하다, ' '시간이 없다, ' '육아, 집안일이 너무 많다' 등등. 딸 아이에게 하지 말하는 남 탓을 요즘 들어 유독 많이 하고 있었다. 비록 그 말을 밖으로 내뱉지 않더라도 내 안에서 그 핑계로 내 부족한 점을 합리화시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가장 많이 들먹이게 되는 지금의 나이.


곰곰이 내 지난 청춘을 돌아보면 그 때도 지금과 사실 다르지 않았다. 성장이 필요할 때마다 시련이 있었고 정신적인 고통이 있었다. 남녀 노소 불문하고 다 겪는 당연한 성장통 일지 모른다. 중년의 안락함 속에 그 동안 안주해오면서 그 방만함으로 인해  어쩌면 당연히 넘어야 하는 작은 시련도 감내하지 못하고 스스로 불평을 했던 것은 아닌가 순간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부끄러운 마음에 아이와의 대화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서재 책장으로 향했다. 약간의 정신무장이 필요할 때마다 펼쳐보게 되는 책 보도 섀퍼의 <멘탈의 연금술>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눈에 가장 크게 들어오는 챕터 명은 "가벼운 아령으로는 근육의 키울 수 없다."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어려운 시련과 문제를 만났을 때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려운 시련과 문제야 말로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아령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고통이 아니면 우리는 성장할 수 없다.
-보도 섀퍼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뼈 있는 말일지 모른다. 그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을 바라면서 가장 큰 성장을 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어쩌면 감당하기 어려운 아령을 들어야만 하는 지금의 시기야 말로 내가 진정 나만의 근육의 크게 키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지금의 도전과 시련을 반가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순식간에 생각이 전환된다 


물론 엄마라는 환경이 주는 특별한 어려움과 장애물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에 핑계를 대는 데 시간을 쓰기 보다는 그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우선은 잘 감당하는데 그 에너지를 쓰려한다. 지금의 시련을 잘 감당해 내고 스스로 원하는 만큼의 성장을 했을 때 그때가서 지금을 뒤돌아보며 어려움을 토로해도 늦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냈다'라는 자랑스러움을 장착하면서. 


페이지들을 쓱 훑어보며 책 표지를 닫으려는 찰나 눈으로 들어온 또 다른 문구. 


미국의 작가 로버트 버데트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아무런 근심과 걱정이 없는 날이 딱 이틀 있다. 그중 하루는 어제이고, 또 다른 하루는 내일이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난다. 하긴 근심과 걱정 하나 없이 지내는 사람이 있을까. 이와 함께 근심스러움으로 맞이한 오늘 또한 '어쩌면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며 스스로 안도(?)한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는가. '오늘 하루 무탈히 보내것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라고. 오늘 밤 자기 전에는 한숨이 아닌 칭찬으로 '나의 최고의 성과'를 격려하려 한다.  


***유난히 걱정스러운 한숨이 나도 모르게 분이 계시다면 '오늘 저 또한 그래요~' 라며 토닥토닥 함께 하는 위안을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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