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지만, 모든 부모가 하지 않는 일은 바로 ‘기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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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나만의 작은 일상들을 사진으로 담아 17권의 사진첩으로 남겨주신 아빠. 항상 내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들어주시던 아빠의 든든한 버팀목이 그리울 때면 한국에서 가져온 10여 권의 사진첩을 한 장씩 넘기곤 한다. 사진들 사이사이 날짜와 짧은 메모, 나의 나이를 적어놓은 엄마의 손글씨 또한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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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매가 모두가 만 4살 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육아일기를 쓰신 엄마. 이유 없이 엄마에게 들러붙어 찡찡거리는 날에도 자기 전 '혹시 어디가 아픈가. 내일 병원을 데리고 가봐야겠다.'며 그날의 체온을 일기장에 적어놓으신 엄마.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을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육아일기 속 엄마의 글을 볼 때마다 "우리 큰 강아지"라 부르시며 나를 반기시던 엄마의 따뜻한 품이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 내 목소리가 담긴 녹음테이프들. 나 어릴 적 3살, 4살 무렵부터 유난히 여러 동요 및 동화 테이프를 즐겨 듣곤 했단다. 더불어 엄마 아빠 앞에서 노래 장기 자랑을 선보이고 구연동화하는 걸 유난히 즐겼던 나. 아빠는 그때마다 여러 카세트테이프에 그 시절 내가 부르는 노래들과 동화들을 녹음해 놓으셨다. 지금은 골동품이 되어버린 카세트 플레이어를 꺼내 들어본다. 엄마, 아빠의 칭찬과 박수 소리에 더욱 신나 하는 어린 꼬마의 낭랑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아스라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그 순간의 행복함이 더욱 선명하게 전해진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때의 엄마 아빠보다도 나이가 든 나. 나는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떠한 기록을 해줬나. 육아일기도 일 년을 채우지 못했다. 둘째 육아일기는 더욱 변변찮다. 매 순간 스마트폰으로 사진 및 비디오를 찍지만 찍기만 할 뿐 이후 정리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있다. 육아일기, 테이프 등 우리 부모님이 내게 남겨주신 소중한 기록에 버금갈 만큼 그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이들에게 미안해진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이렇게 글을 쓰며 잠시나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또한 행복한 육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인 '행복한 엄마'가 되기 위함이라고.
매 번 마음의 토닥임이 필요할 때마다 추억하게 되고 그 이름을 불러보게 되는 엄마, 아빠. 두 분 모두 가을에 생신이 있어 그런지 유난히 더 생각나는 요즘이다. 소중한 기록으로 나의 일상의 모든 순간을 어느 것보다 가장 특별한 시간으로 만들어 준 엄마 아빠. 용돈 선물과 함께 올해는 오랜만에 긴 손편지도 따로 보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