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의 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함께 안 했다면 정말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엑셀' 모임이 어제부로 끝이 났다. 처음 참여했던 날짜를 찾아보니 지난 5월 중순, 마무리까지 장장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엑셀이라면 아주 기본적인 기능만 알고 있기에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번 쭉 훑어서 정리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터. 그러나 경험상 '혼자 틈틈이 해봐야지' 생각만 하는 건 절대 못하기 마련이다 (불굴의 의지가 있지 않는 한!) 특히나 그것이 회사에서 필요치 않은 부수적인 '공부'라면 더더욱. 이럴 때 필요한 건 약간의 강제성. 때마침 인터넷에서 엑셀 공부를 위한 모임 공지를 발견하고 바로 리더님의 연락처를 알아내 메세지를 보냈다. 이미 몇 주 전 시작했지만 운 좋게 받아주셔서 함께 하게 된 모임. 세 명 그룹에서 시작해 추후 한 분 더 들어오시고 이렇게 의기투합한 네 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6개월을 꾸준히 함께 했으니 이 또한 대단한 일이다.
'기초부터 천천히 잘 다져보자'는 공통된 목표로 무리하게 진도를 나가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토끼보다는 거북이의 결승이 목표였다. 속도가 중요한가, 끝까지 하는게 중요하지.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함께 하는 분들 모두 미국에서 계시는 엄마들이어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따뜻한 공감대가 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나 빼고 다들 시차가 있는 서부에 계셔서 늦은 밤에 모임을 가져야 하긴 했지만). 자기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성장하고자 하는 분들에게서 받는 자극들 또한 한 없이 내 자신이 늘어질 때마다 다시금 일어나는데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연말이 다가오는 이 시점, 한해를 되돌아보니 엑셀 모임 이외에도 그 간 거쳐온 모임들이 적지 않다.
온라인 북클럽 '꿈꾸는 메트로',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한국책 오프라인 북클럽, 노래 클래스 모임, 낭독 모임, 영어 원서 읽기 모임, AI 아트 챌린지 모임, 그림일기 모임, 파이썬 및 SQL 공부 모임, 엑셀 마스터, 그리고 '사각사각' 글쓰기 모임 등.
이 들 중 대부분 모임들이 이미 마무리 되었고, 계속 하고 있는 것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새로이 배워보고 싶은 것들과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관한 커뮤니티라는 점이다.
'하는 일 하나라도 잘하라'는 핀잔이 두려워 이러한 모든 모임들에 대해 누구에게 자세히 다 말해본 적은 없다. 몇 가지만 이야기해도 '일하고 애 키우고 학교 다니면서 언제 이런 걸 다 하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사실 한 달에 한 번 모임 하는 것도 있고, 2주 단위로 하는 것들도 있어서 조금씩 부지런을 떨며 매일의 일정을 잘 배분하면 가능한 일이다. 또한 미국 시차도 있기에 애초 모임을 정함에 있어 가능한 정기 모임이 많이 하지 않고 (거의 하지 않거나) 단톡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모임을 선택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일상 속에서 시간을 쪼개여 시간들을 만들어야 하는 것 또한 노력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들에 몰두하는 것이 곧 나의 힐링 시간이자 즐거움이었기에 때문에 열심히 활동하지 않았나 싶다.
감사한 것은 이러한 모임을 통해 스스로 정말 많이 성장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공부, 낭독, 노래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의 모임에서는 전문가급의 리더님 및 회원들이 계셔서 그들의 정성어린 도움을 통해 실로 많이 배우게 됐다. 대학교 전공과는 거리가 먼 지금의 대학원 공부 또한 지난 1년 반 동안 여러 공부 모임을 통해 기본적인 관련 지식을 쌓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최근 몇 년간 줌 등 온라인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미국 거주라는 현실적인 한계를 넘어 자유로이 참여할 수 있었으니 개인적으로는 코로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올 가을부터는 아무래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에 모임들에 조금씩 가지치기를 시작했다. 이미 끝마친 모임들도 있지만 낭독, 그림일기, 노래는 언젠가 이어서 다시 하리라는 생각으로 잠정 휴식을 내린 상태. 물론 미련이 남았다. 그러나 언제든 돌아가면 다시금 환영해 줄 좋은 분들이기에 그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 아닐까싶다. 그 분들이 오래오래 모임을 지속시켜주길 바랄 뿐. 고로 당분간은 급한 불인 공부에 매진하면서 틈틈이 책 읽기를 하고, 좋아하는 글쓰기 모임에만 참여하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머리 쥐어뜯고싶을 정도의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이를 날릴 최소한의 '나만의 힐링 시간, 글쓰기'는 필요하기에.
"실리콘 밸리 놀러 오게 되면 꼭 연락 주세요~"
짧지 않은 6개월간의 시간이었기에 엑셀 모임을 마무리하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화면 속에서만 뵈었지만 많은 정이 들었나 보다. 하지만 이제 실리콘밸리에도 지인이 생겼지않나! 결혼 후 미국에 와서 살면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더더욱 쉽지 않았는데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내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교류하는 즐거움을 얻었으니 이 또한 큰 성과다. 매 시간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 속에 살고 있지만 이들 모두 도구의 변화일 뿐, 역시나 그 성장의 큰 발판이 되는 커뮤니티안에는 가장 중요한 '진정한 소통과 인간적이고도 전문적인 교류'가 있었다.
어제의 모임 마무리에 큰 성취감을 느끼면서도 뭔가 마음 허전한 오전. 커피와 함께 '사각사각 글쓰기 모임' 단톡에 올라온 회원들의 글들을 찬찬히 읽어본다. 그들의 글 속에 공감하고 그와 함께 내 옛 추억들도 더듬어 보게 되면서 마음에 평안함이 찾아온다. 진정성이 담긴 글들을 읽으며 더욱 증폭되는 나만의 생각들과 충만해지는 마음. 이렇게 또 자라는 것 같다.
'커뮤니티 안에 들어갔을 때 더 큰 성장이 이루어진다'라는 어느 강의 속 말이 떠오른다. 내 안의 발전은 물론, 무엇보다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내 인생 중 가장 바쁜 삶을 보내면서도(물론 내가 그리 만든 것이지만) 그 안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고 있는 나의 40대. 10년 뒤에 되돌아 봤을 때는 그 어떤 때보다 빛나리라 확언해본다. 더불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감사한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교류 또한 이어지기를 바래본다.
*올 한 해 많은 모임을 통해서 만나, 좋은 기운과 격려로 저를 성장하게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