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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Apr 19. 2016

영어를 할 줄 아세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순간들.

그 하루의 시작은 피곤했다. 메콩강 투어에 가려면 꼭 오늘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자정 즈음에 비행기를 타고 이곳을 떠난다. 자는 듯 마는 듯 뒤척이다 보니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보다 이윽고 아침이 되었다. 편의점에서 특이하게 생긴 레드불 한 캔을 구입했다. 지극히 현지화된 것인지 내가 알던 디자인의 캔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 모금 털어 넣으니 내가 알던 레드불이었다.


가지각색의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이 여행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심심치 않게 내게 익숙한 말이 들렸다. "혼자 왔어요?", "저는 친구랑 왔어요." 하하호호 떠드는 그 친구들 머리에 얹힌 뉴에라 캡을 보고 있자니 나는 뭐랄까 본능적으로 그들과 섞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그 친구들 머리 위는 뉴에라 대신 '논'이라는 베트남식 모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단지 국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와 친해질 수 있는 정도로 활발하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삼삼오오 왁자지껄한 와중에도 조용히 부유하는 내가 그의 흥미를 끌었는지, 가이드 아저씨는 급기야 너는 어디서 왔냐며 묻기까지 했다.


분주한 반나절이 흘러갔다. 강을 건너고 보트도 타고 마차에 몸을 맡기며, 현지인들이 경영하는 관광객 맞춤 상점들을 전부 지나고 나서야 일정이 끝났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나름 최신식 관광버스에 올랐다. 삼삼오오 있던 무리에는 끼지 못하고 홀로 창가 쪽 멀찌감치 구석에 박혔다. 인기 투어인 까닭에 버스 여석이 많지는 않았다. 혹시 또 나 같은 누군가 옆에 앉지 않을까 하는 조금의 기대를 품었다.



피부가 나보다 까만 소녀가 내 옆에 앉았다. 어디서 샀는지 뻥튀기 과자 같은 것을 들고. 그네들이 먹는 것인가 보다. 익히 보던 것이 아니어서 생소했다. 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들켰는지, 그 까만 손으로 뻥튀기 하나를 집어 나에게 건네 왔다. 그것을 한 입 베어 물며 고마운 표정을 하고 물어봤다.

"Can you speak English?"

"......"


물론 베트남어로 감사하다는 것이 "Cám ơn"인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나는 그저 씨익 웃어 보였다. 옆에 앉은 소녀의 입가에 슬며시 번지는 미소를 보며. 말하지 않아도 아는 순간들이 있다.



글과 사진 모두 youmust@rememberhisna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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