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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r 25. 2016

유리 공예품

무라노 섬, 나는 어느 상점 앞에서 울어버렸다.

베네치아 옆 무라노, 부라노 섬


베네치아에서 무라노, 부라노 섬을 방문한 것은 특별한 생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머물렀던 호스텔에서 A4 용지에 출력하여 건네 준 여행 안내문에, 2박 3일 이상 머무른다면 무라노, 부라노 섬에 가보 되어 있어 배도 타 볼 겸 길을 나선 것이었다.



사실 그런 섬이 있다는 것도 잘 몰랐다. 난 그저 베네치아 또는 베니스에 왔을 뿐이었다. 계획 없이 왔다는 것은 또한 무엇이든 해 볼 수도 있다 의미이다. 복잡하고 미로 같은 베네치아를 떠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수상 버스 같은 것을 이용하는 것이니 교통 패스가 있으면 별도의 비용을 지출하는 것도 아니었고.




유리 공예품 상점


하릴없이 흘러가던 내 발걸음을 잡은 것은, 무라노  어느 상점 쇼윈도 안 산타 모양의 유리 공예품이었다. 이걸 내가 어디서 봤더라 낯이 익다 싶었는데, 예 내 방에 같은 모양의 공예품이 있었던 기억이 났다. 몇 년 전엔가 뭘 잘못 건드렸는지 깨지는 바람에 무심하게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던 그것이었다.



그걸 줬던 사람도 슬며시 기억이 났다. 그 사람은 여행에서 돌아와 그 손가락 하나보다도 작은 것을 사 왔다며 내게 쓱 내밀었었다. 무심하게 내 책상 한편에 서있기만 하던 그것은, 부주의한 나의 손길에 나와 그 사람이 마치 몰랐던 사람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부스러졌던 것이다.


근데 왜 일까. 이글거리는 햇빛 아래 그 쇼윈도 앞에서  . 밀려오는 감정을 추스를 수 없어 급기야 엉엉 울어버렸다. 한참을 그렇게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어떤 후회가 있는 것도, 못 다한 얘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의 20대, 그중 절반이 넘을 오랜 시간에 대한 애도라고 해야 될까. 먼 곳에서 나를 생각하며 그 작은 것을 꼼꼼히 포장해서 조심히 들고 왔을 그 마음, 선물을 받고 그저 좋아해 주지 못한 나의 무심함이 겹치자, 나는 한없이 의자 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사진과 글 모두 youmust@rememberhisna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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