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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r 24. 2016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보는 여정

상트 페테르부르크, <죄와 벌>을 따라서

나에게만 의미 있는 여행?


여행 책에 나온 하루 코스나 2박 3일 코스를 밟아가는 효율적인 발걸음도 즐겁겠으나, 어떤 날은 온전히 나만의 코스를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가령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 순서대로 이동하는 것은 어떨까? 호스텔에서 만난 영국 친구와 돌아다니다 보니 서서히 영어 실력의 한계를 느끼며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는 지금부터 <죄와 벌> 투어를 할 것이라 말했고, 당연히 <죄와 벌>을 읽지 않은(들어는 봤다고) 그 영국 친구와는 호스텔에서 만나자며 헤어질 수 있었다. 


장강명 작가의 <표백>을 읽었을 때, 순수한 이야기 구조도 흥미로웠으나 한층 더 나에게 재미있던 것은 신촌을 배경으로 하는 점이었다. 나도 가끔 가던 부대찌개 음식점이라든지 듣기만 해도 어딘지 생각나는 오피스텔 빌딩이 등장하는 소설의 배경은 내게 더 생생하게 다가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이나 마치 그런 일이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느낌은, 그 배경이 실제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비행기에서 읽는 <죄와 벌>


<죄와 벌> 셀프 투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그렇다. 소설은 물론 허구이나 작가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배경 삼아 충실하게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그래서일까? <표백>을 읽은 뒤 신촌의 부대찌개 음식점이 생각나는 것처럼, 페테르부르크에서 <죄와 벌> 셀프 투어를 돌고 나서는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코프가 도시를 떠돌며 방황하던 움직임 하나하나가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주인공이 다리를 건너며 짙게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던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노파의 거처로 들어가게 되었는지 선명한 이미지로 영화처럼 내 머릿속에 펼쳐지는 것이다. 소설 장면 하나하나가 현실처럼 선명한 경험이 되어 내 눈 앞에 나타난다. 사실 그래서 이후에 <죄와 벌>을 다시 읽어 보고 싶었으나 그 방대한 분량에 멈칫하며 읽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이 찾아간 노파의 집, 이후 그 노파를 살해했다는 것은 스포일러가 되기에는 너무 유명하다.


전당포 노파의 아파트이다. 인터넷을 보면, 외국 사람들은 아파트 내부에 들어가서 노파의 집 대문 앞까지 가보기도 하던데, 일단 입구를 찾기가 좀 애매하고 나처럼 검은 머리 외국인이 들어가면 외부인인 것이 너무 티가 나서 겉에만 둘러보다가 나왔다. 러시아에서는 간혹 동양인이 뚜드려 맞기도 한다고 하니 괜히 조심스럽다.

“With a nervous shudder and a pang in his heart he approached a huge house with one wall facing onto the canal, and the other onto  ____aya Street. The house consisted of small apartments and was inhabited by all kinds of tradespeople... The young man...slipped without notice directly from the gateway to the staircase on the right.”  (Part 1, Chapter 1)



다리를 건너기 전, 그리고 다리 위에서 강을 바라본 모습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여러 번 다리를 건넌다. 물론 모두 같은 다리는 아니지만, 그중 하나인 것이다.

"Having walked out onto the bridge, he stopped by the railing and began looking at the water. And meanwhile Avdotia Romanova was standing close by him... [Svidrigailov] did not walk out on the bridge, but stopped to one side of the sidewalk, trying as well as he could not to be seen by Raskolnikov."



이 장소는 라스꼴리니꼬프가 전당포 노파의 집에서 탈취해 온 재물을 파묻은 곳이다.

 "Coming out from the V___sky Prospect onto the square, he suddenly saw on his left an entrance into a courtyard that was surrounded by completely blank walls... Not seeing anyone in the courtyard, he passed through the gateway... Looking around...he saw a large, unhewn stone weighing about fifty pounds lying directly agains the stone street wall." (Part Two, Chapter Two)



주인공이 노파를 살해하기 위해 노파의 아파트로 가면서 지나가던 유스포프 정원과, 범죄 이후 들락날락하던 경찰서(실제로도 경찰서). 

“Passing by the Iusupov Garden, he began to be carried away by the thought of building tall fountains, and of how they would freshen the air in all the squares.” (Part 1, Chapter 6)


“The police station was less than 300 yards from his apartment. It had just moved into new quarters, on the fourth floor of a different building... Here too the stuffiness was extreme, and in addition, the smell of fresh paint made with rancid oil, assaulted his nose to the point of nausea." (Part 2, Chapter 1)



사진과 글 모두 youmust@rememberhisname.com

* 죄와 벌 투어에서 참고한 링크 http://ascitweb.clas.virginia.edu/projects/jconnolly/index.php?sid=5&pid=1, 영문 소설 발췌본도 위 링크에서 붙여 넣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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