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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r 11. 2016

아우슈비츠에서 만난 일본인 부부

우리는 같은 곳을 보고 있던 것일까?

시간여행


아우슈비츠에 가기 전날, 느리디 느린 호스텔 인터넷을 꼭 붙잡고 노트북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 영화를 옮겨 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 유치한 발상 같기도 한데,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기 위한 준비라고 해야 할까? 시간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소등 시간이 지나 컴컴해진 2층 침대 위에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홀로코스트 holocaust의 시간으로 날아갔다.


다음날 일어나니 감기몸살이 걸렸는지 온 몸이 아팠다. 몸까지 아프고자 한 것은 아니었는데 너무 감정이입을 한 탓이었을까? 


아름다운 크라쿠프의 역사지구, 모든 여행은 이곳에서 시작된다.



버스 


대중교통 인프라가 최첨단으로 구축되지 않은 곳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을 가려면 불편함이 따른다. 인프라가 어느 정도 잘 구축된 곳에서는 구글맵 등을 통해 길 찾기 서비스를 이용하면, 내가 타야 할 버스 및 언제 그 버스가 도착하는지도 상세하게 안내해 주니 사실상 입 한 번 뻥긋할 기회도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미리미리 어디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지 찾아보고 확실한 방향인지 물어보는 수고를 해야 한다. 간혹 전혀 버스정류장 같지 않은 허허벌판이 버스정류장인 경우도 있다.


이날은 버스를 잡기 수월한 날이 아니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시외버스를 타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데, 이번엔 폴란드에서 시외버스를 타는 것이니 말이다. 대충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의 폴란드식 표현)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는 것만 알고서 갔다. 


내가 탈 버스는 지하 정류장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오시비엥침?", "오시비엥침?" 물어보며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나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앉았다. 자리에.


다시 크라쿠프로 돌아오는 시간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같은 곳을 보고 있던 것일까?


크라쿠프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아우슈비츠행 버스를 타고 약 70km를 한 시간 정도 이동하면 아우슈비츠에 도착한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금방이라도 비가 올 거 같은 날씨였다. 여행할 때는 날씨가 좋은 것이 좋지만, 오늘은 어쩐지 이런 날씨도 잘 어울린다 싶었다. 아우슈비츠니까. 


입장을 하려는데 소나기가 왔다. 나는 다행히도 우산을 가져와서 꺼내 들었지만 우산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 처마 밑이 붐볐다. 그 유명한 정문을 지나려는 참에, 정문 옆 붐비는 처마 아래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어제 같은 호스텔에서 만났던 일본인 부부이다. 호스텔에서도 인사 나눴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과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니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에게는 이 아우슈비츠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졌다. 홀로코스트의 산물이었던 아우슈비츠를 바라보며, 우리는 일제시대 그 암울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공감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이곳에서 한국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 아무 느낌은 없는지 괜한 의문이 들었다. 


지금 이곳에서 보는 것, 느끼는 감정들이 서로 다르지 않을까?


바로 요 처마 밑.



아우슈비츠 방문기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 속에서 아우슈비츠를 둘러보았다. 아우슈비츠는 같은 모양의 수용소 동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가운데, 각 건물이 각기 다른 테마의 사진이나 유품 등을 전시하는 구조이다. 수용자들의 유품을 모아 놓은 전시관도 있고 수용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지냈는지, 수용자들의 이름과 사진을 전시한 건물도 있다. 수용자들의 유품을 모아 놓았던 곳이 좀 더 기억에 남는다. 안경, 신발, 가방 등 쌓여 있는 유품들을 보고 있으면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아득한 예전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엊그제 일어났던 비극처럼 생생하다.


이렇게 같은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다.


전시관을 둘러보다 보니 어느덧 비가 그쳤다. 그리고 언제 흐린 날씨였냐는 듯이 해가 뜨고 나니 아우슈비츠는 평화로웠다.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은 탓인지 관광객들도 많지 않아, 쭉 놓인 흙길을 홀로 유유히 걸어가고 있으니, 마치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 같이 조용하고 아늑하다. 언뜻 보면 사진을 찍어 동화책 배경으로 써도 썩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보면 사물은 선악이 없고 이념이 없지만, 인간의 역사는 그것에 이야기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다. 


자연물이 아닌 유적지와 건물, 문화를 찾아나서는 여행은 결국 오래된 이야기를 쫓아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만약 알지 못한다면 그저 이곳은 평화의 전당이요 목가적인 유랑지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날씨가 좋아지니 평화롭고 아늑해 보인다. 


아까는 비가 와서 자세히 못 봤던 정문을 다시 봤다. 어제 쉰들러리스트 영화에서도 봤던 것이라 낯설지 않았다. 부착된 문구의 의미는 "노동은 자유를 준다."이다. 'B'자의 형태가 이상한데, 수용자들이 저항의 의미를 가지고 거꾸로 달아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라도 잔혹한 권력에 대해 저항을 했던 것이다.  



사진과 글 모두 youmust@rememberhisname.com

예전 ABROAD 여행잡지에 소개되었던 저의 여행기 중 아우슈비츠 부분을 좀 더 개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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