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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y 11. 2016

핀란드의 안녕한 오후

먼 곳에 계신 당신도 안녕하신가요?

바람은 쌀쌀한데 햇살은 따뜻하다. 계단 위를 슥슥 털어내고 풀썩 주저앉았다. 가방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꺼내 물었다. 탈린에서 큰 페리를 타고 헬싱키로 건너오니 모든 것이 비싸졌다. 식빵을 하나 사서 되는대로 끼워 먹으니 적당한 요깃거리가 된다. 대충 버티다가 물가 싼 곳에 가면 왕창 먹지 뭐.


딱히 가야 할 곳도 없었다. 무슨 대성당이니 광장이니 하는 곳은 며칠 전에 이미 다 둘러본 뒤였다. 큰 맘먹고 시장에서 연어 한 접시도 사 먹었고, 카모메 식당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알았고, 영화에 나왔다는 물가 옆 카페까지 다녀온 뒤였다.



한가함이 넘치니 호사가 되었다. 시시덕거리며 페이스북에 사진 한 장 올려 보니 부럽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아냐, 나는 멋진 직장에 다니기로 한 네가 부러운 걸.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몇 개 달다 보니 금세 지겨워졌다. 언젠간 돌아갈 텐데 세상 일에 관심 없을 수 있을까. 결국 여기 있는 것은 남들보다 부족한 탓인데. 그래도 어쨌든 안녕했다. 이게 안녕한 것이지 누가 안녕할까. 정말 안녕한 오후다.


할 일 없이 앉아 있다 보니 문득 네 생각이 지나 갔다. 너는 나를 많이 좋아했었는데, 넌 날 좋아해야 된다는 협박 비슷한 얘기를 듣던 날, 우린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었다. 만났던 시간이 짧지는 않았는데, 한 번도 너에게만 해 줄 수 있는 말을 해주지 못했다. 어느 날 밤, 그 먼 곳에서 네가 찾아왔던 날엔 핸드폰 전원을 꺼버리기도 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방문이 싫다는 이유를 통보한 후.



문득 그날 한참을 서성이다 발걸음을 돌린 너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다시 그 먼 길을 돌아간 시간, 어두웠던 밤 돌아갈 차편은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뭐라 뭐라 너를 나무라던 내 말에 넌 한 마디도 뭐라 하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싸우면 영영 그만 보겠다던 내 얘기가 기억나서였을까.


핀란드의 봄은 추웠다. 체질이 바뀌었는지 이제는 내가 갑작스레 누굴 찾아가기도 한다. 지금쯤이면 너도 안녕한 오후를 보내고 있을까. 할 일이 없다 보니 문득 생각이 났다.


글, 사진 모두 youmust@rememberhisna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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