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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Jan 29. 2018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불렀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순간들

피에르 pierre를 처음 만났을 때는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길고 긴 도보 여행 중 하루 종일 비가 내려 다들 흠뻑 젖은 때였다. 조그만 숙소에 짐을 풀고 축축한 신발을 걱정했다. 얼마 뒤 비가 멈추고 옅은 햇빛이 났다.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투숙객 서너 명이 저마다의 신발을 가지고 마당으로 모였다.


햇빛이 나는 방향을 따라 신발을 쭉 늘어놓고서는 통성명을 시작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들은 네덜란드, 스위스, 캐나다에서 왔다. 피에르는 캐나다 사람이었다. 매번 그렇듯이 나는 한국에서 왔으며 이름은 'Jin'이고 법을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기계적으로 소개했다. 그 뒤에는 사실 딱히 말할 게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다 같이 저녁 식사도 하게 되었다.


피에르는 어느 날에는 진짜 local bar를 습격해 보자고 제안했다.


속도가 비슷한지 그 후로 자주 피에르를 만났다. 바 bar에서 숙소에서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가워하며 서로 대화했다. 나는 영어를 못하니 할 말이 없을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각자의 이야기를 했지만 나중에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했다. 어느덧 나와 피에르는 함께 걷기 시작했다. 누가 함께 걷자고 제안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야기를 계속 나누다 보니 자연스그리 되었다.  


나는 피에르가 머리는 새하얗고 거동이 느렸기 때문에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백색증이 있어 그리 보인 것이었다. 머리가 새하얗고 그래서. 물론 당연히 피에르는 아주 젊은 사람도 아니었다. 적어도 나의 부모 또래는 되었으니까.


피에르는 백색증 때문에 시력이 좋지 않았다. 햇빛이 드는 곳에서는 검은 안경을 착용했다. 며칠을 함께 걷고 난 뒤, 나는 피에르의 부탁으로 ATM에서 피에르의 돈을 대신 인출해 주기도 했다. 피에르는 눈이 안 좋아서 ATM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도 다른 사람의 카드로 돈을 인출해 본 적은 없었다.


오사카에서 온 유코 아주머니는 다리가 불편했다. 그런데 느리지 않았다. 나보다도 빨랐다.


피에르와 지루한 고원을 한없이 지날 때였다. 해는 내리쬐고 그늘은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디가 시작인지 모르니 어디가 끝인 줄도 몰랐다. 피에르는 학교에서 초등학생에게 음악을 가르친다고 했다.  


대화가 끊기고 조용한 시간을 걷던 중 나는 노래를 시작했다.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피에르는 그 뒤를 이었다.


"And in my hour of darkness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그리고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불렀다.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글/사진 모두 youmust@rememberhisna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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